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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Jul 12. 2020

이렇게 사랑받아도 될까요?

나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가 절대적이라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
"그냥 혼자 있었어요. 떨어졌다고 어떻게 말해요. 취업이 되지 않는 동안 한 번도 집에 연락하지 않았어요."
 
대학교 때 누군가의 쪽지를 통해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나의 어린 시절은 첫째로서, 그리고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기에 사랑받고자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뒤켠으로 담아두어야 했다. 그래야 의젓하고 착한 아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의 존재는 가려졌기에 늘 성적이 발표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것 봐요. 제가 이렇게 잘했어요." 그러한 모습이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나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기대와는 달리 그 어떤 관심과 집중이 아닌 늘 돌아오는 것은 원래 너는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앞으로 더 잘하라는 대답뿐,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큼의 인정과 주목을 받기에는 부족했다.
 
나에게 가장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 실행조차 어려운 말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거지? 사람들은 그것을 자존감이란 말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떤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또 누군가는 자존감이 낮다는 식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쉽게 쓰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존감이 낮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라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죠? 나는 완벽하지 않고 많은 실수들도 했어요. 이런 저를 알게 되면 언젠가 실망하게 될 거예요.' 늘 내 안에는 나를 향한 비판자가 잔인한 눈으로 나를 내려보며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을 두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 높은 잣대를 들이댔다. 그렇게 한없이 작아진 나를 돌아보면 늘 남들보다 부족해 보이는 것들이 너무 크게 보였다. 그렇게 늘 내 안의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을 받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선생님 말씀은 죄는 잘못이지만 저의 존재 자체,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바로 그거예요."

그동안 나의 부족함과 연약한 부분, 대단하지도 않고 탁월하지도 않음이 나의 존재와 뒤엉켜 그것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뒤틀린 틀 속에 나를 가둬두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넘치도록, 배가 터지도록 사랑과 관심을 받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 모습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상대방의 사랑 또한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순간 불안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왔다.
 
늘 불안해 편히 쉴 틈 없었던 삐쭉빼쭉 가시 돋은 내 마음에, 여름의 굵은 빗줄기처럼 사랑에 마른 땅을 해갈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그런 경험 한번 가질 수 있다면, 학원 가던 길 차에 치여 놀라 울며 돌아와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 엄마를 기다려야 했던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이 채워질 수는 없는 걸까. 엄마가 필요했다고.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늘 나에겐 엄마가 필요했지만 장애를 가진 동생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의젓해야 했고 인정받는 착한 맏딸이 되기 위해 혼자라는 외로움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고 보살핌 받고 싶었던 어린아이는 여전히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내 마음속 텅 빈 방을 만들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방을 다 큰 어른의 억지와 투정으로 채움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왜 그랬던 것 같아요? 첫 번째 물었을 때는 모르겠다고 말을 했는데 두 번, 세 번 물어보니까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을 잘하잖아요. 왜 그랬어요?"
"글쎄요. 아마도 두 번, 세 번 물어봐 주니까 표현을 해도 되는구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두 번, 세 번 물어봐주니까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 내가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고 욕심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마음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누군가가, 그래서 넌 어떤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글쎄, 좋은 것 같아"라는 말을 당연스레 달고 살았다. 어떻게 좋은데?라고 물으면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제야 나의 감정을 한 번 더 살피게 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나 사랑해?"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나이가 되면서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질리도록 물어왔다. 연약하고 부족한 내 모습에, 그리고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에 사랑을 향한 불완전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받으려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냉랭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사랑이 늘 부족했던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엄마의 말투와 행동, 눈빛 하나하나에 나를 향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을까 불안해져 온다. 그러다 쭈뼛쭈뼛 조심스레 다가가 묻는다. "엄마, 나 사랑해?", "사랑하지". 엄마의 대답 하나에 눌러두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마음이 서러운 눈물이 되어 쏟아져 온다. 주저했던 엄마의 품에 다시 안겨도 되는구나. "그런데 왜 그랬어.."
   
여전히 커서도 대상만 바뀌었을 뿐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한없이 움츠려 들어 상대를 살피는 어린 시절 꼬마 아이를 보게 된다. 사랑이 변하지 않았는지, 버림받을 것이 잔뜩 겁이나 좀채 쉬지 못하는 내 마음에 스스로 지쳐버린다. 그리곤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가 미워 소심한 복수를 생각해 낸다. 내가 떠나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어릴 적 내가 죽으면 죽은 나를 보고 엄마, 아빠가 마음이 아파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사랑해줬어야 했는지 알아주길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또다시 불안해하며 예쁨 받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내가 그동안 예쁘네~하고 사랑해~라고 말했던 거는 생각 안 나?" 사실이었지만 나를 향한 못난 자아가 사랑과 인정이 필요했던 어린 나를 공격하는 순간에는 그것들은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사라질 것처럼 보였나 보다.
"생각나." "그럼 그런 것들 생각하면 되지 왜 자꾸 부정적인 것들만 남기려고 해.. 내가 너의 마음 살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눈물이 핑 돈다. 다이어리에 늘 껴두고 편지 속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붙들며 나는 이런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나에게,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게 다가온 그 사람. "비빔면에는 전을 함께 먹어야 해!" 엄마에게조차 해보지 못한 떼를 쓰는 다 큰 나의 억지스러운 요구에, 못 이긴 척 더위 속에 전 반죽을 준비하는 뒷모습이 있다.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걸까. 비가 내릴 때 온몸으로 비를 맞고 한없이 젖어들어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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