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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Aug 09. 2020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공간, 글

글이 나를 가장 나답게 하고 나를 치유하게 한다

주변에서 글을 써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언니 글은 뭔가 특별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계속 글을 써봐요.. 나의 글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과 좋았다는 반응들. 그냥 내 느낌과 생각들을 내 안에만 둘 수 없어 공유했던 나의 글에 다양한 긍정적인 반응들이 더해질 때마다 나의 글을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특별하기는 한 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썼을까를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던 어린 꼬마 시절 때부터였다. 어릴 적 나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엄마는 늘 동생 치료를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갔다 온 나는 빈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아픈 동생에 비해 건강하고 멀쩡했던 나에게 엄마, 아빠는 내 방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은 작은 두 칸짜리 상하방 전세에 살 때도 넓은 거실이 있는 우리 집이 생겼을 때도 나에게만 주어졌던 부모님의 배려였다. 하지만 나는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했고 너무 외로웠었다. 환하게 불 켜진 내 방을 넘어가면 어두운 거실이 나온다. 그 거실을 지나면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큰방이 있다. 늘 그곳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와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노크하고 "엄마 나 들어가도 돼?"라고 물어보면 쉬웠을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내 방문을 열고 어두운 거실을 지나 닫힌 큰방 문을 여는 것이 낯선 이의 방문을 여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고독했던 내 방에 앉아 외로움을 스스로 느끼며 일기장 속 보이지 않는 상대를 만들어 나의 시간과 감정을 나눴다.


안녕 키티야, 나는...
 
동생이 아팠기 때문에 부모님의 모든 관심과 보살핌은 동생에게 온통 가 있었다. 장애로 인한 돌발적인 행동과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무력감을 느껴야 했던 순간들은 모두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 멀쩡한 나마저 응석을 부린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어른 아이가 되기를 선택했고 표현하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쌓여가는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과 외로움, 불만들을 스스로 풀어내야 했다. 하지만 외롭고 소외되었다는 사랑에 대한 갈구들이 만들어 내는 감정들에 대해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있기나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써서 내야 했던 밀린 일기가 아닌 진짜 내 이야기를 일기에 쓰는 것을 나는 시작하기했다. 그 시절 주말마다 티브이에서는 주말의 명화를 늘 방영해 주었다.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주말 영화를 보는 것이 집 안에서 놀 거리가 없었던 나에게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늦은 저녁 티브이에서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영화를 보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속 친구조차 만날 수 없고 밖에도 나갈 수 없었던 그녀에게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 키티라는 이름의 일기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에게 받은 일기장에 스스로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진짜 일기 쓰기는 외로웠던 나에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엄마에게 혼나 서러움과 억울함에 엄마에 대한 분노로 화를 쏱아내고 싶었을 때도,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 간 동생이 미워질 때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다른 집에 입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을 때도 나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다른 이와 나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나의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하얀 종이와 펜 하나면 충분했다. 그곳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고, 정제된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마저도 알 수 없는 낙서로 풀어내면 힘든 마음조차 어느 순간 나만은 알아줄 수 있었다. 늘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수하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었던 나에게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은 어떤 것조차 허용이 되는 엉망이 되어도 괜찮다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늘 상대방을 살피며 내가 원하는 것조차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 나에게,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표현하기를 그쳐버린 나에게 글이라는 공간은 나를 잊고 살아가는 나에게 내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글 속에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왜 힘들어하고 기뻐하는지 잘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곳에는 그 어느 것도 공격적이지 않아 내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어 경직되지 않아도 된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을 문자로 하나하나 적어 내려 가고 내가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세상 속 가장 적절한 단어를 통해 가장 나다운 것으로 풀어낸다. 어릴 적에는 일기를 쓰며 나만이 알아주었던 소통이 필요했던 나에게 이제는 좀 더 용기를 내어 문자에 생명을 불어넣어 세상에 탄생시킨다. 내가 느꼈던 생각과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내 속에 떠돌았던 형체가 불분명했던 것들이 문자라는 옷을 입고 하얀 눈 길 속에 깊이 박혀 그 실체를 나타낸 어떤 이의 발자국처럼 신비롭게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어린 꼬마가 장애를 가진 동생을 이해하는 것도 품어내는 것조차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아픈 동생에게는 누나였고 부모님에게는 첫째 딸이었지만 부모의 사랑과 관심, 보호가 필요했던 스스로를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저 어리고 철없을 아이였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과 자라온 환경들이 만들어낸 나만이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던 사고의 흐름 속에 빚어낸 감정들과 감동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 주어진 세상들과 맞물려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만들어 간다. 그것들을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이 되어 빛을 내도록 하는 것 같다. 때로는 아픔이었던 순간들 마저도 특별한 순간이 되고 생명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글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가고 지나온 과거도 아름다운 빛으로 다시 색칠해 나간다. 지금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도 그리고 내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꿈꿔가는 미래도 글을 통해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나의 삶의 스토리가 되어간다.
 
문자에 생기를 불어넣고 생명의 호흡이 들리는 글이 되어 세상 속의 사람들에게 그 마음의 울림을 주는 글을 쓰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살았던 감정들과 환희들을 되찾고 살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작은 바람의 숨결을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런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외로웠던 나에게 사랑이 필요했던 나에게 그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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