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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나무 Jun 22. 2023

낯선 곳에 홀로 있을 때

나와 대면하다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장소, 시간, 사람 가운데 나를 던져두는 일이다. 온 신경이 집중되었던 집과 일터, 분주하기만 했던 일상, 정형화된 루틴, 익숙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온전히 나를 분리한다. 짧은 시간일지언정 삶의 중심을 옮긴다. 익숙함과 분주함이 주던 소음은 제거되고 고요함이 물밑 듯이 몰려든다. 그 시간에 마법이 찾아온다. 한걸음 물러나서 타인을 바라보듯 나를 보게 된다. 모든 신경세포들이 오로지 '나'라는 사람의 관심과 기쁨, 생각에 집중된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위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다.  


나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다. 일상에 지칠 때면 '홀로' '훌쩍' '낯선' 곳을 찾아 떠난다. 복작복작하고 왁자지껄한 한 장소보다는 자연이 좋다. 자연 속에 멈춰 서면 오감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물이 흐르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조용히 곁을 지나가는 소리, 나무 잎사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피부에 와닿는 따뜻한 햇살. 그 멈춤의 시간이 좋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이 품은 힘,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은 힘을 느끼다 보면 세상 속에서 내가 겪는 걱정과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깨달음은 신선하다.  


새해를 맞아 훌쩍 떠난 여수로의 여행. 하루에 몇 번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해 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향일암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 가파른 길을 올라가고 나서야 매표소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서도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계단은 끝이 없이 이어져 있어 불안했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 사찰을 둘러보고자 했다. 제발 늦지 않게 도착하기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정상. 사찰 아래 펼쳐진 푸르른 바다, 새빨갛게 물든 일몰, 머릿결을 살짝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모든 게 멈춰버린 듯 고요한 순간,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단 십 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보낸 긴 시간을 상쇄할 만했다.    


향일암, 여수
향일암, 여수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나는 여전히 훌쩍 여행을 떠난다. 어느 여름날은 베트남 다낭에 홀로 있었다. 숙소를 나섰다. 햇살이 따사롭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좁은 골목길을 걸어간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이들은 하루 영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어떤 이는 일터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고, 또 어떤 이들은 여느 날과 같이 가족, 친구, 지인 이것들 중 어느 하나에 속할 법한 이와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다. 그들에게는 일상인 공간이지만 나에겐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자연스레 멈춤의 시간이 찾아온다. 새로운 환경이 던져주는 온갖 생경한 인풋들로 인해 나의 감각은 생생히 깨어나고 생각은 살아난다. 익숙한 나와는 다른  나이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가운데 홀로 있을 때 온전히, 오롯이 나의 감각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랄 볼 수 있어서 그것이 좋다. 


Photo by Kevin Wolf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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