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아침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하며 또 다른 평범한 하루를 맞는다.
뉴스와 메시지를 훑으며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살펴보지만, 정작 내 삶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근길, 등굣길, 혹은 아이들을 보낸 뒤 찾아온 짧은 여유 속에서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켜고 영상과 커뮤니티를 넘기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
회사에 도착하면 반복되는 업무가, 학교에선 익숙한 수업과 대화가 기다리고, 그 일상은 언제나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극을 찾는다.
새로운 영상, 새로운 쇼핑, 새로운 이야기를 하이에나처럼 탐색하지만, 자극도 반복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집안일과 육아 역시 끝없이 되풀이된다. 매일 해도 끝이 없고, 반복되는 육아에 짜증도 난다.
가끔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며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속 허전함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SNS 속 타인의 하루는 언제나 더 특별해 보이고, 내 일상은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기 전,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문득 지나버린 시간을 확인하고는 ‘내일은 좀 더 의미 있게 살아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만약 이 하루를 얻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쉽게 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우리에겐 매일 기적이 찾아온다. 그 기적은 바로 ‘오늘’이라는 하루다.
하지만 기적이 매일 찾아온다는 익숙함 속에, 그 소중함을 자주 잊는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지만, 매일 마주하는 익숙함 속에서 짜증을 부리고 당장 몇 분만 숨을 못 쉬어도 사람은 죽지만 공기의 존재조차 당연하게 여긴다.
건강도, 사랑도, 공기조차도 너무 익숙해진 것들은 때로 그 가치를 잃는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이 하루는,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랐던 하루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당연한 오늘은 없다.
지금, 이 하루조차도, 사실은 기적처럼 주어진 선물이다.
내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잠시 눈을 감고 한번 상상해 보자.
어느 날 평소처럼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몸은 무겁고 힘이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난 낯설고 나약한 모습의 미래의 나 자신이 되어 있다. 깊게 팬 주름,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랑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성장의 기적을 볼 수 없고, 반려동물도, 배우자도, 버팀목이던 부모님도 곁에 없다. 그제야 귀찮다고 여겼던 육아, 일상, 소소한 대화들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마음속 깊이 외친다.
“그 평범했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상상 속에서 눈을 뜨면 익숙한 풍경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앞에 있다. 거울 속에 비치던 나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한 나이 든 나는 더 이상 없다. 얼굴에 깊게 패었던 주름은 없어졌고 몸도 다시 활기가 생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반려동물이 나를 반기고 내가 성취하고 나의 열정을 이룰 수 있는 회사가 있으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학교가 있다.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기적을 바라볼 수도 있다.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아이들의 장난감, 집안의 모든 물건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오늘 그 자체가 눈물 날 만큼 사랑스럽다.
남편이나 아내가 건네는 잔소리가 귀찮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걱정하는구나. 이런 소리조차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하는 마음이 든다.
회사 가기 싫어 피곤했던 출근길도, 젊은 내가 버티며 걸어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웃으며 대답한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조차 언젠가는 다시 들을 수 없을 날이 오기 때문이다.
무심코 넘겼던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 그 자체가 눈물 날 만큼 감사한 선물임을 느끼며 살아간다.
달라진 것은 없다. 언제나 평범하고 무료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하루의 나로 돌아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똑같이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30년 후 미래의 내가 바라던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살 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있고, 그 책임도 나에게 있다.
누군가는 이런 상상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상상도 해보자.
평소와 같은 어느 날 며칠이 지나도 소화가 잘 안 되고 헛구역질이 나아지지 않는다.
특별하게 먹은 음식도 없는데 이상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며 생각하고 며칠 지냈지만 몸의 컨디션은 더 안 좋게 느껴진다. 얼마 전 과음했던 술이 문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업무가 바빠서 눈치가 보였지만 이대로는 업무 자체가 힘들 거 같아 연차를 냈다.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몇 가지 했는데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한다.
아무 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숨길 수 없다.
큰 병원 진료실, 의사는 앞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잊은 듯 한참 동안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며 마우스 휠을 쓱쓱 돌리고 있다. 그의 안경에 비친 하얀 모니터 화면이 변하고 있는 걸 보면서 의사가 뭔가를 보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었다.
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모니터에서 나에게로 옮기며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암입니다.”
그 순간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세상이 나에게 벌을 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내 안엔 ‘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보냈던 하루가 갑자기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상상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보내는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숨 쉬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밥을 먹는 것,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르는 그 한마디까지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게 기적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나이가 지나면 우리는 다시 찬란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결국 미래의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바로 지금, ‘오늘’이다.
우리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 부모님이 잔소리, 친구와 사소한 대화, 배우자의 말 한마디, 반복되는 출근길 등 모든 순간이 미래의 내가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 할 "기적 같은 순간"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
더 웃고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더 아껴주고 더 칭찬하며,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낼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하루란 없다.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 숨을 쉰다는 것,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가 기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내일이 올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 내일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오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먼 미래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삶에서 선물 받은 하루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눈 뜨고 숨 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이 순간, 1분 1초가 얼마나 값진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의 모든 장면은 누군가에겐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오늘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자.
이 순간, 지금이 바로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