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늘 내 옆에 있었다.

by 라임웨일

미래를 미리 알면 우리는 행복할까?

최근 정재승 교수님이 집필한 <열두 발자국>을 다시 읽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뇌과학 실험과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한 가지 실험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 실험은 원숭이를 컴퓨터 화면 앞에 앉히고 여러 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원숭이는 마우스를 움직여 도형을 클릭하고, 특정 도형을 선택하면 보상으로 오렌지주스 다섯 방울을 받게 된다. 실험 초기, 원숭이는 다양한 도형을 클릭하다 우연히 특정 도형에서 오렌지주스가 나오는 것을 알게 된 후 매우 기뻐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반복하며 특정 도형을 누르게 되면 반드시 오렌지주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자 이후 기대감은 사라지고 보상을 받더라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상으로 제공되는 주스의 양이 기대한 다섯 방울보다 적은 두 방울만 나오게 되면 원숭이는 실망감과 좌절을 경험했다.


정재승 교수는 한 실험을 통해 기쁨과 쾌락은 기대감에서 비롯되며, 특히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을 때 우리가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미 예상한 결과는 감흥이 떨어지고, 그만큼 행복감도 줄어든다.

월급날 당연히 받는 월급보다, 우연히 길에서 주운 5만 원에 더 큰 기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다. 예측 가능한 미래는 기대감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느끼는 행복도 감소하는 것이다.


이 일화는 원래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알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챕터에서 소개되었지만, 나는 이 실험을 보며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행복을 늘 행운이나 특별한 성취를 통해서만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사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길에서 우연히 주운 돈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특별한 일에 기대를 걸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곤 한다.


행복은 어쩌면 늘 곁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너무 예측 가능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놓치고 있었을 뿐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종종 행복을 '무언가가 충족된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오히려 인간은 더 큰 불안과 후회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단순히 ‘무엇을 선택했는가?’가 아니라, 그 선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즉, 행복은 외부의 결과보다 내면의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삶과 닮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동일한 사건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고, 그 해석의 차이가 인생의 방향까지 바꿔 놓기도 한다.


A 씨는 한때 대기업 입사를 꿈꿨다. 하지만 반복된 취업 실패 끝에 선택한 현실은 중소기업이었다. 정해진 업무는 없었고, 사소한 일부터 잡무까지 모든 일이 그의 몫이 됐다. 일은 많고 월급은 적었다. 만족은커녕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다.

그는 종일 시계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따라 초침조차 유난히 더디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은 여전히 멀었고, 시간은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하루를 버텨낸 끝에, 겨우 퇴근 시간이 찾아왔다. 그는 황급히 컴퓨터를 끄고, 지친 몸을 이끌어 회사 문을 나섰다.


오늘은 유난히 더 힘든 하루였다.

이런 날은 야경이 보이는 멋진 식당에서 와인 한 잔을 즐기며, 그럴듯한 사진 한 장쯤 SNS에 올려보고도 싶은 상상을 했지만, 얇은 지갑은 그를 현실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고민 끝에 그는 순댓국을 포장해 집에서 먹기로 했다. 배달을 시키면 편하지만, 포장하면 천 원을 아낄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집으로 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비닐봉지를 든 손에 땀이 차도록 걸어야 했다. 시간은 돈이라는데, 괜히 천 원을 아끼려 자존심을 판 기분이었다. 씁쓸함은 발걸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허기를 채웠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알람을 맞추고, 내일 출근을 위해 이불을 덮었다.

아무 일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 시선으로 A 씨의 하루를 바라보자.

A 씨는 대기업 취업에는 실패했지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중소기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도맡는 일이 버거웠지만,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실력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이 모든 경험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감사했다.

다양한 일을 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심사도 생겼고, 예전보다 꿈의 범위도 넓어졌다. 또한 반복되는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체계를 만들고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업무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고, 여유도 생겼다.

동료들로부터는 칭찬을 받았고, 회사에서도 그의 역량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올라가고, 일에 대한 만족감도 커졌다. 누군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 모든 노력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된 것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순댓국을 떠올렸고, 포장하면 1,000원을 아낄 수 있다는 사실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직접 걸어가야 했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거나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시간은 금처럼 귀한 것이었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었다.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의 자신을 떠올렸다. 하루 동안 성장한 모습을 되새기며 뿌듯함을 느꼈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다시 출근을 위한 잠자리에 들었다.


위의 두 이야기를 통해 어떤 차이를 발견했는가?

두 삶을 비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행복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첫 번째의 A 씨는 자신이 원하는 대기업에 가지 못했고, 힘든 중소기업에서 억지로 하루를 버틴다. 하루 종일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시계를 바라본다.

그에게 주어진 일상은 스스로를 입증하지 못한 ‘결핍의 증거’일 뿐이다.


반면 두 번째 A 씨는 같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는다.

작은 일에서도 배움을 발견하고, 일의 흐름을 정리하며 효율을 만들어간다.

그는 매일의 성장을 스스로 경험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두 번째의 A 씨는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실무 역량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고, 그 덕분에 직장 내 인정도 점점 커진다. 그는 스스로 만든 일 처리 시스템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만의 효율적인 루틴을 만들어간다.


삶의 만족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세계를 살아간다.



행복은 일상 속에 녹아 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믿는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내며、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간다.

어떤 목표는 한 달 만에 이룰 수도 있고, 어떤 목표는 1년, 혹은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계속 불행한 상태인 걸까?


진짜 행복은 목표를 이루는 ‘순간’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목표를 이루는 것은 그 여정을 걸어온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일 뿐이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면 곧바로 새로운 목표, 더 큰 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삶은 끝없는 갈증이 계속될 뿐이다. 목표에만 삶의 의미를 두고 답을 찾으려 하면, 우리는 끝없는 굴레 속에 갇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돈은 우리에게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까?

우리는 늘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월 300만 원만 벌면 행복할 거야.”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면 곧 “500만 원이면 좋을 텐데…”, “1000만 원이면…” 하고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욕망은 계단처럼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삶에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돈은 분명히 삶에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순간은, 돈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다. 돈에 대한 욕망이 마음을 잠식하면, 어느새 삶은 욕망이 이끄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때부터는 내가 내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나를 끌고 가는 삶이 된다.


목표는 성취되는 순간 새로운 목표를 불러오며, 만족의 수명은 짧다.

이것을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한다.

1978년, 심리학자 브릭먼(Brickman)과 동료들은 로또 당첨자와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 수준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당첨 직후의 기쁨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이 지나자 로또 당첨자들은 일상적인 행복 수준으로 돌아갔다. 마비 환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응하며 일상적인 감정 상태를 회복했다. 이는 인간이 어떤 감정 상태든 시간이 지나면 '기준선'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의 대표적 사례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의 연락, 예상치 못한 칭찬, 퇴근길에 마주친 노을, 타인의 뜻하지 않은 배려 등 예측하지 못한 행복이 삶에 선물로 배달된다.


행복에 대한 인상 깊은 비유 중 하나는 “행복은 향기와 같다.”라는 문구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고 좋은 기운을 내뿜으면 그 향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스며든다.


인생에서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은 행복이 아니다.

행운은 소멸성이 강하기 때문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더욱이 모두에게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내 삶의 모든 행복한 순간 속에서 우연한 행운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행운은 행복이라는 우리 삶에 찾아오는 선물이 된다.


틱낫한 스님은 “불안과 갈망은 대부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행복은 언제나 지금에 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은 전달한다.


행복은 바깥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자리, 나의 시선 속에 있다.

비가 온 뒤 파란 하늘을 바라보자.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겨보자.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기분을 느껴보자. 나비가 춤추고, 아이들이 웃고, 구름이 흘러가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또한 걷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숨 쉬는 것 등 사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이미 행복이 아닐까?

그렇기에 삶 그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이제라도 내 옆에 있는 행복을 바라보자.


그리고 지금 내 옆에 함께 있는 행복을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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