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다. 지금처럼

by 라임웨일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길을 잃는다.

마치 짙은 안개가 낀 터널 속을 걷는 것처럼, 방향을 알 수 없고, 자신에 대한 확신도 흐릿해질 때가 있다.

대부분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바로 자신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행동에 확신이 생기지 않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계속해서 망설이게 된다. 한 걸음을 내디뎌도, 그 뒤엔 어김없이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하는 불안이 따라온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살아가는 걸까?

그 시작은 대부분 ‘비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라왔다. “○○kg 우량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교와 숫자로 가치를 매기는 삶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자라면서도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평가, 친구들의 눈빛 속에서 점점 '내가 원하는 나'보다 '남들이 원하는 나'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꾸미게 만들고, 진짜 내 모습은 어딘가에 조용히 감춰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대신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만 배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기 전에,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있는 ‘그냥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 가치를 확립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로 대답해 보자.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사람이 아니라 내면에서 진짜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웨인 다이어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평가는 그 사람의 경험과 편견이 섞인 일시적인 시선일 뿐이다.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시선은 현실이 되고, 나를 가둬버린다. 타인이 만든 기준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진짜 얼굴은 점점 흐려지고 만다.


이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나는 ‘나’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내면의 질문에 어떤 이는 즉각 답을 찾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답을 얻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희소성의 가치

한번 생각해 보자. 수많은 명품, 비싼 차와 보석들이 높은 가격에 팔리는 이유는 뭘까?

브랜드의 명성, 뛰어난 소재, 탁월한 마케팅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희소성’에 있다. 희소성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특별함에서 비롯된다. 한정된 수량, 한정된 기간, 혹은 특별한 에디션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사람들은 그 물건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경쟁적으로 소유하려 한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희소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욕망을 자극하고, 소유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마케팅을 활용한다. 본질은 거의 같아도, 아주 작은 변화와 희소성만으로 소비자들의 강한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이처럼 희소성은 단순히 물건의 가격을 높이는 요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느끼는 만족감과 자부심의 근원이 된다.

결국 ‘희소성’이 곧 가치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가장 ‘희소성’의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정판,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는 고유한 ‘나’라는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잊지 말자.



내면의 고통을 마주하기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친구에게서 받은 말일 수도 있고, 어릴 적 부모님에게 들은 한마디일 수도 있다. 어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어떤 상처는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며 결국 흉터가 되어 남는다. 그 상처는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삶을 회피하게 만들며, 때로는 나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면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내 마음이 어떤 지점에서 연약한지를 알아갈 때 비로소 자신을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상처받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자아는 더 단단해진다.


상처를 무시하거나 애써 덮으려 하지 말자.

상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감정이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 없는 외침이다. 그리고 상처는 반드시 회복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고 따뜻한 내면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상처가 있기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상처가 있기에 더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바라볼 때,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짙게 드리운 삶의 안개도 서서히 걷히고, 그 너머에서 마침내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

‘완벽’이라는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자.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까지도 모두 나의 일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 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내면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결함과 약점까지도 내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실수와 불완전함을 통해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부족함은 배움의 기회가 되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마주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그 자체로 충분하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미워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를 부정한 채 '더 멋진 나'만을 쫓는다면,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타인에게는 쉽게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인색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미워해 왔다면, 내면의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화해하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랑도 온전히 내게 닿을 수 없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천천히 들여다보자. 그러면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나에게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어”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자. 이제부터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안아주자.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이 세상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작지만 확실한 나를 사랑하는 연습

“○○야! 오늘 수고했어.”

자신의 이름을 넣어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해”, “타인에게 친절해야 해” 같은 말은 많이 들어 익숙하지만

정작 신을 위로하고 칭찬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어색하고, 그래서 서툴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침 거울 앞에서 “오늘도 잘 해보자”며 자신에게 환하게 웃어주자. 피곤한 퇴근길,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자.

작지만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자존감에 양분이 되어 싹을 틔운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고, 때로는 마음에서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여주자.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외부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으려 하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또 다른 결핍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가 아닌 내 안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 자신에게 말하자.

“사랑해,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다. 지금처럼

“할 수 있습니다. 잘 해낼 수 있어요.”

이 문장은 작가 송희구님의 책에 사인으로 적혀 있던 글귀다. 짧은 문장이지만, “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인생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선택은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있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불안해하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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