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고 어른이 된 우리

by 라임웨일

잊혀진 나의 기억

퇴근 후 아이와 나눈 평범한 대화였다. 늘 그렇듯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부터 자신이 이룬 대단한 업적(어린이집에서 한 일과를 아이는 큰 성취로 느끼며 나에게 종종 말한다.)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아이가 1~2살 무렵의 기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아이에게 따로 말해준 적도 없는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기억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서 물었다.

"우와, 그걸 어떻게 기억해? 그게 기억이 나?"

그러자 아이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기억나지!”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순간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어렸을 때 기억이 없지?"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나도 아이와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울고 웃으며, 부모에게 일과를 이야기하고 세상을 처음 배워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까? 마치 처음부터 그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단지 막연하게 "어제 일도 기억을 못 하는 데 몇십 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어?"라고 치부하기엔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이와의 대화는 나에게 새로운 의문점을 남겼다.



아동기 기억상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이런 현상을 ‘아동기 기억상실(childhood amnesia)’ 또는 ‘유아 기억상실증(infantile amnesia)’이라 불린다. 이런 현상은 나만 겪는 게 아닌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 우리는 7살 무렵 이전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과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라붙는다.

“뇌의 해마(hippocampus) 부위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이 잘 안된다.”

"자기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 주관적인 기억이 남기 어렵다."

“언어 발달이 이루어지기 전이라서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위의 설명을 들으면 납득이 가고 머리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정말 그것뿐일까?

왜 꼭 그 나이가 되면 기억을 잃어야만 할까? 왜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우리의 기억 상실이 단지 뇌의 발달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기억이 사라지는 진짜 이유는 ‘기억의 부재’가 아니라, ‘삶의 프로그램’이 처음 설치되는 과정은 아닐까?

마치 새 컴퓨터를 사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지만, 기본 운영체제가 설치되면서 환경이 정해지듯이 말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지금껏 경험한 기억과 느낌, 환경, 부모의 모습을 보고 학습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잠재의식에 넣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인 존 볼비(John Bowlb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모델을 학습하고 그것을 내면화한다.”

(In the working model of the self…a key feature is how acceptable or unacceptable (they themselves) are in the eyes of (their) attachment figures.)


부모와의 관계, 주변 환경의 반응, 사랑의 방식, 불안의 처리, 말투와 태도까지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무형의 코드로 각인된다.

아이는 처음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름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먹고, 자기를 반복하며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한다. 부모의 말과 생각, 행동을 마음속에 새기고, 주변 환경에서 얻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인다. 부모의 말투를 따라 하고, 행동을 흉내 내며, 부모의 감정 반응을 복사한다.

아직 자기 자신이라는 확실한 틀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그걸 ‘자신’으로 만들어간다. 이 모든 경험이 마치 하나의 ‘삶의 프로그램’처럼 아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쌓인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행동을 배우고 주변에서 받아들인 것들로 자신만의 삶의 코드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코드가 성장 후에도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된다.


캐롤 드웩의 저서 <마인드 셋: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에서는 “고정형 마인드 셋(fixed mindset)”과 “성장형 마인드 셋(growth mindset)”을 구분하며, 아이 시절 부모나 환경이 준 메시지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는 “너는 머리가 좋지 않아”라는 말로 자기 가능성을 제한당하고, 누군가는 “실패는 배움의 일부야”라는 말로 실패를 성장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삶의 초기 설정값이다.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부자 법칙’, 습관, 말투, 행동, 태도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지만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가난에 익숙한 습관, 말투, 태도, 마인드 셋을 학습한다.

현실을 둘러보면,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나오고, 법조계 집안에서 법조인이 나오는 일은 드물지 않다. 우리 삶에는 이렇게 경험과 환경에서 반복된 결과가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초기 설정은 기본값일 뿐이지만, 반복된 학습과 말은 곧 습관이 되고, 결국 신념이 된다.


<법구경>에는 아래의 말이 나온다.

"마음이 모든 법을 앞서가고, 마음이 모든 법을 지배한다. 마음에 의해 온갖 행위는 지어진다."

우리의 마음이 길들여진 대로, 우리는 그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무엇이든 원하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정해진 코드의 삶에 종속되어서 살아야 할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도 부자가 되거나, 전혀 다른 길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각인된 코드를 의식적으로 수정한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심어진 ‘가난한 마인드’, ‘나는 안 돼’라는 믿음은 사실 스스로 정의하고 확신한 마음일 뿐이다. 마음은 스스로 다시 정의하고 시작할 수 있다.

바위에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처음에는 아무런 힘도 없이 바위의 표면만 적신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곳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결국 바위를 뚫는다.

물길이 없던 곳에 비가 쏟아지면 아무렇게나 빗물이 흘러내리지만, 조금씩 빗물은 같은 길을 따라 흐르면서 결국 그 자리에 물길을 만들어낸다.


삶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매일 똑같은 말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복되는 선택과 행동이 결국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며, 작은 변화들이 시간이 지나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렇게 작동하는 건 아닐까?

나는 요즘 내 삶에 각인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나의 이런 행동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 말이다. 그것이 나를 바꾸는 일이며 내 주변을 바꾸고 내 아이의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그런 시도만으로도 내 삶에는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7살 이전의 기억을 잃는 게 단순한 뇌의 발달 때문인지, 아니면 삶이라는 시뮬레이션의 첫 세팅 때문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은, 결국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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