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빨리 불행해지는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내 삶을 스스로 지옥으로 만들면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를 단절하고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며 누군가의 노력을 폄하하고 관계의 벽을 착실히 만든다면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난 시기심은 내 삶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는 연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비교를 통해 나의 자존감마저 스스로 허문다면 나는 완벽한 불행의 감옥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늘 타인에게 화를 내며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퍼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내뱉는 욕과 부정적인 감정을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경험하는 사람이다.
마음은 객관적이지 않다.
같은 행동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아무렇지 않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하면 괜히 거슬리고 화가 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속 감정의 해석 때문이다.
'틀렸다'는 감정조차 '내 생각이 옳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내가 옳다고 믿기에 다른 방식이나 의견이 등장하면 거부감이 생기고 그로 인해 분노가 쌓인다. 그리고 그 분노는 내 삶을 불행으로 이끈다.
결국, 가장 많이 상처받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의 좋은 일이 왜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바로 ‘비교와 질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이 자라나면 그 관계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속으로는 비교와 질투심에 짓눌려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우리를 빠르게 불행의 차선 위로 올려놓는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비교'라는 틀 안에 놓여 살아왔다. 학교는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우리는 그 성적표로 대학을 정한다. 진짜 내가 원하는 꿈보다는, 손에 쥔 성적표에 맞춰 꿈을 조정한다.
그렇게 경쟁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자신을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떤 날은 내가 거둔 성취가 남보다 낫다는 이유만으로 안도하고 우월감을 느끼지만, 어떤 날은 타인의 성과 앞에서 좌절과 패배감을 배우며 자란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비교의 잣대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질투와 시기의 감정은 스트레스를 쌓이게 만들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삶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감사와 기쁨의 감각마저 희미해진다.
결국 우리는 남과의 비교 속에서 결핍감을 느끼고, 열등감이라는 그림자에 시달리게 된다.
<성경>에는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질투는 단지 마음의 병에 그치지 않고 몸까지도 해친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비교는 기쁨을 앗아가는 도둑이다."라고 말했다.
비교는 내 삶에서 기쁨을 슬금슬금 훔쳐 가며 내가 가진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결국 비교는 내 삶에 스스로 퍼지게 하는 독과 같다.
10억의 자산을 가진 사람도 100억 부자를 보며 불행해하고 100억을 가진 사람은 1,000억 부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비교는 바닥이 없는 구덩이다.
나보다 높은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는 '나는 왜 이러지'와 같은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타인의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치를 낮추며 하찮게 여기게 된다. 비교와 질투은 결국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불행해지는 데에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질투하고 비교하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불행이다.
내 삶을 불행으로 빠르게 밀어 넣는 또 다른 감정은 ‘미움’과 ‘원망’이다.
사랑해야 마땅한 가족, 친구, 그리고 가까운 이들에게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품는 순간, 그 감정은 곧 내 마음을 지배하는 어둠이 된다. 미움과 원망을 곁에 두고 살아가다 보면 그 감정은 내 기분을 넘어서 성격이 되고, 성격은 결국 삶이 된다.
한 번 마음속에 자라난 미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악취를 퍼뜨린다. 그리고 그 악취를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맡아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그조차 익숙해져 버린다. 그 감정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어둠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게 된다.
미국의 작가 맥코트는 “분노하며 원한을 품는 것은 내가 독을 마시고 남이 죽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움과 원망은 결국 내 삶을 서서히 파괴하는 독이다.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일상을 서서히 차갑게 만든다. 상대는 그 미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심은 미움과 원망의 감정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간다.
때로는 아주 작은 오해나 사소한 말다툼이 계기가 되어 오랫동안 앙금이 남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마음속 벽이 되어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그 미움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이 불행하길 바라고, 그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도리어 내가 괴롭고 불행해진다. 결국 나는, 스스로 만든 지옥 속을 살아가게 된다.
상대에 대한 미움에 사로잡혀 악의를 품기 시작하면 증오는 끝없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가장 크게 타들어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삶이다. 증오와 원한의 악순환은 자신을 감정의 굴레에 가두고, 삶의 온기를 점점 잃게 만든다.
<법구경>에서는 "미움은 미움으로써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 오직 자비로써만 미움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의 평화에서 시작된다.
미움과 원망으로 들끓는 마음에는 행복이 머물 자리가 없다.
하루 중 문득 떠오르는 불쾌한 기억들, 가슴속을 맴도는 오래된 장면들이 있다면 그 감정들을 더는 붙잡지 말고, 그저 흘러가게 놓아주자.
그리고 내 삶에 작은 평화, 작은 기쁨이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자.
미움과 증오는 지속적인 감정을 소모하지만, 용서는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증오와 원망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행복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바로 우리 마음의 변화이다.
우리는 종종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말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밤이 되어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밤중에 목이 말라 주위를 더듬거리다 옆에 있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밤에 마셨던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구역질했다.
그 순간, 원효대사는 "마음이 움직이니 온갖 현상이 나타나고, 마음이 고요하니 온갖 현상이 사라진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물은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바뀌자 전혀 다른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헤아려본다면,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많은 것들이 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하기 시작하면 새삼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교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지금의 나를 먼저 사랑해 주자.
기독교 <성경>에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타인에게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미움과 원망이 머물던 자리에 나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이 가득 찰 때 내가 내려놓았던 미움과 원망, 타인에 대한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행복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다. 각자만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이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이 다른 누군가에겐 간절한 삶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저 일어날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해석 때문이다. 타인도, 환경도, 조건도 바라보는 내가 바뀌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순간들에 감사하고 사랑으로 관계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따뜻하게 격려해 줄 때 그토록 찾던 행복은 나의 삶 모든 순간에 함께 하게 된다.
불행과 행복은 모두 내 마음속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내 삶에 가장 빠르게 불행해지는 것도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것도 나의 선택이며 내가 만들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지에 따라 불행도, 행복도 시작된다.
내 삶을 사랑하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자. 비교를 멈추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자.
불행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끊고 다시 내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