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관점’은 ‘프레임’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각자가 가진 고정된 틀과 익숙한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이 고정된 틀이야말로 변화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동화 ‘핑크대왕 퍼시’는 관점이 현실을 어떻게 규정짓는지 잘 보여준다.
핑크색을 유난히 사랑한 퍼시왕은 궁전부터 옷, 가구, 심지어 음식까지 핑크로 물들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라 전체를 핑크색으로 칠하려 했다. 백성들에게 집과 가축, 나무, 꽃까지 모두 핑크색으로 염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런데 단 하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만큼은 바꿀 수 없었다.
답답해진 퍼시왕은 현명한 스승을 찾아갔고, 스승은 안경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안경을 쓰고 바라보세요. 하늘은 이미 핑크색입니다.”
퍼시왕은 의아한 얼굴로 안경을 썼고, 순간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자신이 원하던 바로 핑크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제야 퍼시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퍼시왕이 꿈꾸던 세상은 결국 바깥이 아니라, 보는 방식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은 색안경을 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짧은 상상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눈사람과 물고기를 떠올려보자.
상상을 모두 끝냈다면 이제 다음 글을 읽어보자.
눈사람을 생각할 때 대부분은 둥근 원 두 개를 겹쳐 놓고, 나뭇가지 팔이 달린 형태를 떠올릴 것이다. 물고기는 옆모습, 긴 타원형 몸통에 삼각형 꼬리를 붙인 형태가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눈사람은 꼭 둥글 필요는 없다. 네모난 눈사람도, 세모난 눈사람도 가능하다. 물고기 역시 옆모습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에서, 혹은 정면에서 본 모습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조차도 사실은 학습된 이미지와 프레임일 수 있다. 길을 떠올리면 일렬로 이어진 선을 생각하고, 집을 떠올리면 사각형 벽과 삼각형 지붕이 그려진다. 하지만 길은 여러 갈래로 뻗을 수 있고, 집은 둥글 수도 있다.
조금만 관점을 비틀어 보면, 매 순간 새로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정된 관점은 변화의 흐름을 막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의심해 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은 10,000번의 실패 끝에 빛을 내는 필라멘트를 찾아낸 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효과가 없는 10,000개의 방법을 발견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배움으로 삼으며 누구는 성장을, 누구는 좌절을 선택한다.
삶은 자신이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때론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보자.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가능성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친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관점은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은 장애물을 도전으로 보고, 절망에 빠진 사람은 기회마저 위기로 받아들인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면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돼”라고 격려하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쉽게 좌절한다. 실패를 과정이 아니라 끝으로 보기 때문이다.
관점은 단순한 생각을 넘어 감정을 움직이고, 선택을 이끌며,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유연한 관점은 삶을 더 넓고 풍요롭게 만들고, 경직된 관점은 삶을 답답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질문하고 뒤집어볼 때, 익숙함 뒤에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다채롭다.
가장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은 ‘나’ 중심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갈 때 일어난다.
부모님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들도 서툰 ‘처음’의 부모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기에 엄격했고, 표현이 서툴렀을 뿐일지도 모른다. 갈등은 이해로, 상처는 공감으로 바뀐다. 그 시작점이 바로 관점의 전환이다.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관계의 변화는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혔을 때, “왜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은 좌절을 키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보며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받아들이면 오해가 쌓이고 서로의 관계는 쉽게 어긋난다. 꿈을 향해 가면서도 “난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된다.
모든 관점은 바뀔 수 있다. 다양한 경험, 사람, 책, 교육, 질문을 통해 기존에 낡은 관점을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지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잠시 멈춰 자신의 감정과 천천히 돌이켜 보자. 그러면 지금의 감정을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의 관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결과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관점의 결과다.
삶은 완벽할 수 없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가치 있는 여정이 된다. 결국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환경도, 조건도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다.
관점을 바꿔보자.
관점이 바뀌면, 새로운 길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다르게 보면, 정말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