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지나고 쓰는 신춘문예 당선후기

by 다라

다시 '그 시즌'이 왔습니다.

이때가 되면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해야 할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다가 쓸쓸하게 연말을 맞는 일이 매년 반복됐습니다. 요즘은 원고를 프린트할 곳도 많지 않은데, 어느 대학가를 찾아 장당 100원짜리 출력물을 열댓 장 뽑는 일, 뽑은 원고는 고이 품에 안고 평일 우체국을 방문해 '신춘문예 담당자 앞'이라고 수줍게 쓴 봉투를 창구 직원 분께 내미는 일. 이 의미 없는 도전을 올해도 할 것인지.. 포기할 때도 된 건 아닌지..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그건 저에게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감이 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재작년엔 미리 합평반에 들어가 대회 준비를 해놓고 정작 원고를 투고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합평을 받아보니 글에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였고 마감일 전까지 수정이 불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엔 수업에서 만난 문우들과 합평 스터디를 시작했고 또다시 신춘문예 시즌을 맞았습니다. "어디 투고하셨나요?" "전 아직.." 몹쓸 대화가 또 이어졌습니다.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원고 제출을 미루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 전해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최소한 투고는 하자.


이번엔 1년을 준비한 셈이었습니다. 합평 스터디에 1년 동안 꾸준히 참여했으니까요. 결국 마지막에 투고를 결심한 저는 가진 작품 세 편을 한 곳에 제출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가 원고 마감을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 고민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발송일자 우체국 소인이 제대로 찍혔는지, 유효할지 걱정했는데 우편물이 편집국에 잘 도착했다는 우체국 안내 문자를 받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평화롭던 오후 휴대폰 진동이 울렸는데 신문사 기자라는 발신자 문구가 떠있었습니다. 그 신문사에서 저한테 전화를 걸 일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급하게 화장실에 가서 받은 전화로 당선 소식을 들었고 정신이 없던 저는 투고한 세 편의 작품 중 어느 것이 당선됐는지 묻지도 못한 채 금세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겐 당선이 됐는데 무슨 작품인지는 모른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각 분야 당선자끼리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질 거란 안내를 받고 잠시 대기했습니다. 그때 저의 심정은....


뭐랄까, 놀랍지 않지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당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스무 살 이후 공모전에 열 번은 넘게 투고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따지면 그 이상이 될 거고요. 작은 상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심사위원들이 제 글을 못 봤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심사평도 못 받을 정도의 실력이었던 건데, 그냥 그렇게 현실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았으니까요...)


그래서 당선 전화를 받는 일은 왠지 해본 것처럼 익숙했는데(하도 상상을 많이 해서;;;), 그다음부터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 투성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선을 확신하는 것과 정말 당선이 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제 미천한 상상력은 당선 이후의 일을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그리진 못했던 것입니다. 제일 의외였던 부분을 몇 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생각보다 많은 연락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춘문예를 아직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주변에도 그런 분들을 지인으로 많이 두고 있으실 거라 짐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 예상하지 못했던 반가운 연락을 주변에서 꽤 받았습니다. 제가 당선된 신문사는 한 지역의 신문사고, 저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소식을 보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생각 외로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마 신춘문예 전체 당선작을 일괄로 확인하는 분들이 있으신 거라 생각합니다.


2. 화려한 시상식

선거철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신년회 겸 많은 분들이 자리에 참석해 수상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신문사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문인협회 분들 외에도 그 지역의 국회의원과 도지사, 교육감, 지역 박물관 관장님 등 여러 분들이 참석하셨고 같이 식사할 기회가 마련 됐습니다. 다만 동석한 가족과는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분들이 축하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금은 공고에 나온 금액에서 종합소득세 3.3%를 공제한 뒤 받았습니다. 급여소득세가 아니라는 점이 흥분되고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3. 소설가협회 연락 & 당선작품집 출간

신년이 되고 며칠 후 신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 소설가 협회에서 제 연락처를 물었는데 알려줘도 괜찮냐는 문의였습니다. 동의하면 소설가 협회로부터 메일을 받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품집 관련 안내인데 소액이지만 선인세도 포함돼 있습니다. ^^ 생애 첫 작품집 계약을 마치고 신문 지면상 다 싣지 못한 수상소감도 추가해서 원고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증정본을 받았고 서점에도 출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서점 페이지엔 제 이름이 소설가로 등록이 되어있고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소설가를 꿈꾸는 분들의 최종 목표가 작품 활동 시작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탁을 받고 작품집을 내고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쓰는 작가로 남는 것을 모두가 원합니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건 그 꿈의 첫 계단을 밟았을 뿐이겠지요. 그 다음 계단을 언제 밟을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막막함은 글 쓰는 사람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스스로 부여한 '의무감'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도 되지 않고, 누가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놓지 못해 잠을 설치고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우울감에 사로잡힙니다. 도대체 이 우울의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거든요.. ㅠ 신춘문예 당선은 그런 막막함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당선이 되기 전부터 당선을 확신한 문청들은 원하는 모습의 작가가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이미 맞다고 믿으며 글을 써나갈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러다 정말 원하는 모습의 작가가 되면 또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는 바보 같은 소감을 남기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계속 써나갈 생각입니다. '최소한 투고(완고)는 하자'는 결심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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