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세이_빵빵한 보름 씨와의 만남(1)
내가 4살 쯤 됐을 때 잠에서 깼다.새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었고 사과를 나눠 먹으면서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잠시 눈을 비비던 나는 어리둥절해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지금 아침이가? 밤이가?"
그 말에 4살 터울인 언니가 킥킥 웃었고 아빠도 재밌다는 듯 흰색 앞니를 드러내며 개구진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엄마도 사과를 깎으며 입꼬리를 씰룩 거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 옆을 파고 들었다.
"다라야, 아빠도 가끔 밤인지 새벽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빠가 사과를 베어 물으며 웃었다. 나는 곧 스스로 밤이라는 걸 깨닫고 어떻게 완전히 새벽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지 신기해 했다. 엄마가 사과를 건네줬고 나는 그걸 깨물었다. 우린 곧 다른 얘기를 하면서 다같이 뉴스를 보고 저녁을 보냈다.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할 때 나는 악몽을 많이 꿨다. 혼자 잠에서 깨면 20여 년 전의 그 거실이 괜시리 그리웠다. 어느 문을 열고 나가면 환한 형광등 아래 남은 가족이 평화롭게 자리를 지켜주고 있길 바랐다. "다라야, 여기야. 지금은 밤이거나 아침인데 어느 쪽이라도 너는 안전해." 누가 말해주길 바랐다. 애석하게도 내가 몸을 뉘인 원룸엔 밖으로 나가는 현관문 외엔 어떤 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무서운 꿈을 꾼 자리에 내내 누워 홀로 꿋꿋이 밤을 견뎠다. 영영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은 막막한 기분인데도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든 가끔은 헷갈릴 때가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작 가족들은 그때 각자 너무 힘들 때라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지 못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동시를 배워서 일하는 엄마 옆으로 가 내내 시를 반복해 읽었다. 엄마는 그때 비닐에 고무줄을 끼우는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흥미롭게 들어줬다. 동시는 "내 발소리만 들어도 나인 줄 아나요?" "내 숨소리만 들어도 나인 줄 아나요?" 같은 질문으로 반복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을 해봤는데 발소리만 들어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이 없는데도 괜히 큰 소리로 엄마한테 내 발소리만 듣고도 나인 줄 알 수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럼!"
엄마는 투명한 비닐에 퐁퐁 나있는 구멍 사이로 고무줄을 낀 바늘을 빠르게 통과시켜가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뒤로도 대답엔 막힘이 없었다. 내 숨소리, 내가 벗어놓은 옷가지만 봐도 나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심지어 깊이 사랑하고 있어서 내 발소리 내 숨소리만 듣고도 나라는 걸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어쩐지 나는 쑥스러워졌다. 곧 동시 읽기를 멈춘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다른 놀거리를 찾았다. 그래도 엄마가 활짝 웃으며 "그럼!" 대답해 준 모습은 한참동안 머릿 속에 남았다.
처절하게 사랑에 실패했을 때, 오래 준비한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그냥 나도 모르게 내가 싫고 비참할 때 나는 엄마의 명쾌한 대답을 떠올렸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 회사도 있지만 그게 내 존재를 흔들어놓진 못한다. 나는 한때 작은 발소리에도 귀기울여주는 사랑을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말을 걸면 일단 행복해하고 웃으며 대답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위안이 되는 순간은 많았다. 오후에 엄마 팔에 안겨서 오지 않은 잠을 청하려 눈을 꾹 감던 순간, 엄마는 거실에서 우리 네 명이 족히 누울만한 커다란 호랑이 자수를 놓고 언니와 나는 방에 누워 서로 잠들지 않겠다고 눈을 부릅뜨던 새벽, 아빠랑 알밤을 주으러 간 가을, 아빠 손에 채워준 풀가락지, 곧 그걸 빼버린 걸 알았을 때 잔뜩 풀이 죽어버린 마음. 하나 같이 잠에 들지 못한 새벽 갑자기 해운대로 떠나 밤바다를 보고 온 일.
나는 그때를 기반으로 아직 살아간다. 누군가 다시 태어날 거냐고 물으면 그 시간을 다시 살고 싶어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할 거다. 물론 그 뒤로 많이 아팠고(진짜 많이 아팠다...) 서로 원망했고 진심으로 누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시간도 있었다. 지금도 과거로만 묶어놓기 어려운 불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은 영원한 '행복'으로 봉인돼 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언가가 생(生)을 추천하냐고 말한다면 나는 이 시간들을 토대로 '그렇다'고 말할 거다.
합계출산율 0.75인 시대, 결혼도 그렇고 아이를 낳는 데 아무 이득이 없다는 데 완전 동의한다. 그런 선택을 하신 분들도 이해한다.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도저히 셈이 맞는 계산이 아니다.
나는 비이성적인 계산으로 (애써?) 삶을 긍정해 봤고 함께하는 행복을 꿈꾸며 임신을 결심했다. 빵빵한 보름이가 태어나서 '헬조선'을 겪고 왜 이딴 세상에 나를 낳았냐고 원망하면 어떡하지 싶지만..
그 생각이 들기 무섭게 우리가 사랑했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버텨갈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한 생명을 '마음대로' 세상에 내놓아버린, 어쩌면 '무책임한' 임신을 계획한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절대 행복'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행복은 아무래도 어릴 때가 아니면 겪기 어려운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불행할 요소가 너무 많다.) 앞으로 10년은 누군가를 많이 안아주고 눈 맞춰 주고 확답해 주는 삶을 살아야지. 나는 그렇게 임신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