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약 1년, 그리고 지금 몸담은 곳에서 16년. 꽤 오랜 시간을 회사원으로 살아왔습니다.
“무서운 X세대”로 불리며 사회체제를 뒤흔들 존재감을 내뿜던 때도 잠깐 있었는데,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만큼 위력적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따금 “나 때는 말이야”라고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세월 참 많이 흘렀다고 느끼게 됩니다.
CEO급인 베이비붐 세대와 제 또래 전후의 X세대, 그리고 새로운 MZ세대들이 함께 회사생활을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인 1960년대생들이 아직 건재하지만, 4차 산업혁명 등 거대한 사회 변화와 함께 회사의 조직문화도 기존과 달리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세대 간 갈등에 따른 잡음도 요란하게 들립니다.
이 같은 세대문제를 다룬 책들이 최근 2~3년 동안 많이 출판됐었지요. 이달 초 서점에서 만난 <센 세대, 낀 세대, 신세대 3세대 전쟁과 평화>도 비슷한 주제의 책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를 센 세대로, MZ세대를 신세대로 다루면서 그 사이에 있는 40대 제 나이 또래를 ‘낀 세대’로 명확히 표기해 준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센 세대, 낀 세대, 신세대 3세대 전쟁과 평화> 표지. 회사 생활에서 만나는 세대 간 갈등 쉽고 재미있게 다뤘습니다.
지난해 공전의 히트작인 <90년생이 온다>가 MZ세대의 특징과 동료·소비자 측면에서의 의미를 살펴봤다면, 이 책은 보다 회사 조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내에서 세 연령층 간 서로 다른 의식과 생활 방식을 여러 사례와 함께 쉽게 재미있게 서술한 점이 돋보입니다. 큰 축으론 선배세대와 MZ세대로 나눠 얘기하지만, 사례마다 회색지대에 있는 X세대의 고충을 담아내 ‘그래 맞아, 둘 사이에서 내 심정이 이랬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표지의 이미지도 꽤 괜찮습니다.
야생적인 호랑이와 곱게 키운 듯한 애완용 강아지, 각각 센 세대와 신세대의 느낌을 살려줍니다. 중간에 소의 모습으로 있는 낀 세대는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갑니다. 이 셋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또 저마다 육식·잡식·초식동물이기에 함께 어우러지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특히 회사의 주축(이라고 하기엔 다소 노쇠해진) X세대가 잡식동물이 아닌, 덩치에 맞지 않게 풀만 뜯는 소에 비유되는 것은 이 시대 설 곳 없는 낀 세대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자꾸 동질감을 느끼네요~).
막상 먹으면 짜장이나 짬뽕 하나 다 먹느니만 못하다는 짬짜면. 낀 X세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p.105).
“알고 보면 너도 짠해, 나도 짠해!”
이 책은 각 세대가 살아온 시대상과 경험, 역할 등 차이로 가치관이 벌어져 세대전쟁을 하지만,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애절함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쟤는 틀린 놈이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던 시선을 접고 존중과 배려의 눈으로 관찰하면 상대의 배경과 문화, 불만과 불안이 느껴집니다. 내 마음의 스크래치가 아니라 다른 세대의 감춰둔 그림자도 보입니다. 우리가 다른 세대에 대해 몰랐던 것이지, 그가 틀렸던 것은 아닙니다.
최근 들어 임원분(솔직히 아직 이분들까진 거리가 있습니다)이나 선배 팀장들의 심정과 행동에 격하게 공감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가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하실 때도 있지만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여기지요. 함께 일해오며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조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겁니다.
이 같은 시선이 위쪽이나 옆으로만이 아닌, MZ세대 구성원들에게도 향한다면(MZ세대 또한 다른 세대들을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더 큰 이해관계 속에 서로를 돕는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그러면 세대 간 갈등을 넘어 조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과 글은 쉬우나 실제 생활이 따르지 못한다는 게 늘 문제입니다.
책에 언급된 것처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베이비부머와 ‘피할 수 없으면 견뎌라’는 X세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MZ세대의 인식 간극이 쉽게 메워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서로 쳐다보지 않고 외면하면 이 사회와 기업은 시너지 없이 분리되고 말겠지요.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마음가짐이 다른 세 세대. 조화가 참 어려워 보이지만, 공존의 양지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p.29 표).
사실 2017년부터 2년간 기업문화 주관 조직에서 일하면서 '이 같은 주제의 글을 한 번 써봐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흰>(한강 저),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의 제목과 내용이 머리에 남아서, 저는 <낀>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려 마음 먹었었지요.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며 일하는 것 같았던 주니어 구성원이 어느날 회식자리에서 갑자기 "나를 무시하지 말라"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다음날 팀은 비상입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회의를 열고 면담을 합니다. 그러면서 리더와 중간관리자, 해당 구성원 삶 속 여러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봅니다. ▲회사에서는 최고경영층에, 집에서는 아내와 자식들에 치이는 팀장 ▲팀장과 신입사이에서, 기득권과 소수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간관리자 ▲부모님의 너무 큰 기대와, 연속된 경쟁 속 불안에 떠는 신입사원. 이 사회에 끼어 완생이 되지 못한 세명의 이야기를 <82년생 김지영>처럼 담담히 풀어가고자 했습니다...만, 지난해 갑작스레 몰린 일과 불혹아닌 부록임을 깨달은 사추기 방황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새 트렌드를 타고 여러 사회과학 도서들과 에세이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이 <센 세대, 낀 세대, 신세대 3세대 전쟁과 평화>는 장르는 다르지만, 제가 다루려 했던 소재와 전하려 했던 주제를 제대로 담아낸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꼰대가 어른으로 바뀌진 않지만, 모르는 것을 보다 제대로 인지할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 뒤에는 반드시 평화가 오는 법입니다. 세대전쟁 후에도 들에 화평의 꽃은 피어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내 마음의 위로와 향후 사내 세대 간 소통을 위해 잠시 시간 내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