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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Apr 13. 2020

“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으면 안 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밑바닥 인생들의 돈가방 쟁탈전

돈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돈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입니다. 똑같이 울더라도 벤치보다는 벤츠에서 우는 게 폼이 납니다. 간혹 돈에 초연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초연할 수 있는 수준의 돈이 없어지면 허우적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없는 대로 만족하고 살자는 부류인데, 주변에서 “찢어지게 가난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돈의 주인이 되어 잘 쓰면 좋을 텐데, 돈의 노예로 살다보니 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사건이 터집니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런 사람들의 돌고 도는 욕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방안에서 만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보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사기를 당해 생긴 큰 빚을 갚기 위해 접대부 일을 하는 미란. 이로 인해 그녀의 남편은 밤낮 술을 마시고,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견딜 수 없었던 미란은 남편이 죽게 되면 생기는 거액의 보험금에 눈을 돌립니다.

연희는 미란이 일하는 클럽 여사장으로, 사업으로 큰 빚을 지고 애인 태영마저 보증으로 빚에 빠지게 한 인물입니다. 미란이 타는 보험금을 낚아채 외국으로 밀항을 시도합니다.

출입국 사무소 공무원인 태영. 빚쟁이로부터 상환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밀항을 요청하기 위해 집에 들른 미란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들의 중심엔 돈 가방이 있습니다. 돈 가방을 소유하려는 셋,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불법체류자, 사채업자, 형사, 목욕탕 직원 중만 등의 이야기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통해 전개됩니다.     

사건은 이 여자 '미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정겨울 선생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도입 부분에 시간 배열을 뒤틀리게 배치해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한편, 돈 가방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쫓아가는 구성으로 보는 재미를 배가시켜 줍니다. 정우성이 맡은 태영이 다소 나약해 보이긴 하지만, 등장인물마다 배역에 맞는 연기를 잘 해내서 몰입감도 높고요. “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으면 안 돼”라며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처럼 과하다 싶은 잔인한 컷들이 몇 있는데, 비정상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현실을 괴기스럽게 드러내는 장치로 적절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론 요새 흥미롭게 시청 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겨울, 안치홍 선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게 되는 법이야.”

중만 어머니의 말과 함께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떠오릅니다. 기를 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 땅을 얻었지만 결국 죽고 말았던 바흠, 그의 모습이 영화 속 여러 인물들과 겹쳐집니다. 과연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할까요?

배우들마다 등장인물 특성을 살려 연기를 참 잘 합니다. 특히 전도연은 뭔가 남다른 그녀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미란도, 연희도, 태영도, 나머지 인물도 처음엔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과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큰돈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사람과 삶을 잊고 부채와 시기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을 두고 도박을 벌여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악마의 제안은 달콤한 법입니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바흠처럼, 원래 목적을 잃고 생명까지 잃은 밑바닥 인생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영화 속 인물 중엔 가장 선하다고 할 수 있는 이에게 돈 가방이 흘러들어간 건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요? 혹시 제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요? 문득 중만 역의 배성우 배우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분명 그런 돈에는 뒤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찍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고하고 맘 편히 사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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