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그 세상에서 1등을 하면 기분 좋습니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장식에서 우린 <기생충> 덕분에 그 기쁨을 누렸습니다. 승리에 도취해 나머지 작품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1등 주변의 또 다른 좋은 영화들도 만날 수 있는데요. 제겐 1998년 <타이타닉> 뒤에 있었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와 <굿 윌 헌팅>이 그랬고, 이듬해 <세익스피어 인 러브> 곁의 <인생은 아름다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제저녁에 본 <조조 래빗> 또한 그런 작품입니다.
영화 <조조 래빗>.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 10살 소년 조조 베츨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이 극심하던 제2차 세계대전 말미. 10살 소년 조조 베츨러의 눈엔 히틀러는 영웅이고, 상상 속에서 대화 나누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친구입니다. 꿈을 안고 현실 친구 요키와 함께 독일 소년단 캠프에 들어간 조조. 하지만 여린 감성의 그는 토끼의 목을 비틀지 못하고 도망쳐‘겁장이 토끼(조조 래빗)’라는 놀림을 받습니다. 설상가상 그곳에서 수류탄을 잘못 던져 얼굴과 다리에 큰 상처를 입어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홀로 조조를 키우는 엄마 로지는 의기소침한 조조를 일으켜 세우고, 클렌젠도프 대위에게 데려가 잡일을 돕게끔 합니다. 한편으론, 발각되면 목매달리는 걸 알면서도 유대인과 연합군을 돕는 활동을 비밀스럽게 이어갑니다.
조조에겐 예닐곱 살 차이나는 누나가 있었습니다. 전쟁 때문인지 질병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었고, 외부로는 알리지 않은 상태였죠. 어느 날 2층에서 나는 소리에 누나 방에 올라간 조조는 벽 틈 속 (안네의 다락방 같은) 어두컴컴한 작은 방에 있는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납니다. 누나 또래인 엘사의 힘에 제압당한 조조. 그녀의 존재를 비밀로 하기로 약속하지만, 나치를 신봉하는 이로썬 참을 수 없는 일이지요. 조조는 그녀를 신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다 ‘유대인에 대한 보고서를 쓰겠다’는 생각으로 엘사와 대화에 나섭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조조는 죽은 누나 방의 벽 안쪽 작은 공간에서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괴벨스를 만나고, 선전과 교육으로 연계된 PR의 지닌 무서운 능력을 다시금 느낍니다. 평범한 아리아 소년이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찬양하고, 뿔난 괴물에 열등한 민족인 유대인을 말살 대상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힘이 PR에 있습니다. 조조가 엘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나이 들어서 마주쳤다면, 전쟁이 계속 이어졌다면… 자신의 어미가 열렬한 평화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반대편에 서는 것은 물론, 어쩌면 어머니까지 죽이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 듭니다. 목적을 제대로 하는 게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중요함을 되새겨 봅니다.
조조 역을 맡은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참으로 맹랑하고 연기 잘하는 아역 배우네요. 조금 오버하면 그의, 그에 의한, 그를 위한 영화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단독주연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영화 내내 히틀러, 엄마, 엘사, 대위 등을 대하는 그의 감성에 동화되어 영화에 몰입해 있는 저 자신을 느꼈습니다. 조조 캐릭터 자체가 지닌 흡입력도 있었겠지만,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란다”
조조의 엄마이자 유대인 소녀 엘사의 보호자인 로지도 인상적입니다. 캠프에서의 사고로 얼굴에 심하게 상처를 입은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기운 내게 하는가 하면, 반독일군 활동을 하다 목매달려 죽은 이들의 똑바로 바라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독일군 장교에게 떳떳하게 의견을 전하고, 자기 음식을 엘사를 위해 남겨 전하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위로를 건넵니다. 이를 통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그녀가 가진 풍요로운 사랑을 전달합니다.
로지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 처음에는 다소 과장되게 큰 몸짓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란 극한의 위기 상황을 아들이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라도록 하려는 그녀의 애정이 묻어나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조조 앞에서 1인 2연 연기를 하고 함께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죽음의 길로 끌려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인생은 아름다워> 속 로베르토 베니니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오른쪽부터 조조, 엄마, 그리고 대위. 이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삼인방입니다!
“이제 집에 가 누나를 돌봐줘. 알겠지? 저리 가, 이 더러운 유대인 놈! 얘 유대인이야”
히틀러를 비롯한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은 전범입니다만, 독일인 모두가 새빨간 나치주의자는 아닙니다. <조조 래빗>은 독일 땅 그곳에 사는 이들 또한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임을 보여줍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클렌젠도프 대위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는 독일군인 그는, 우군과 적군으로만 나누면 연합군의 적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나 조조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게슈타포와 엘사의 대치 장면, 전쟁 패배로 조조와 함께 잡힌 장면에서의대위의 선택은 이 영화 백미의 순간이라고 손꼽을 수 있습니다. 엄마 잃은 소년이자 전쟁 후 새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조조를 위한 그의 애정은,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10살짜리 요키마저 총을 들어야 하는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엄마와 대위가 있었기에 조조는 마음속 친구 히틀러를 발로 차버리고, 쪽방 속 엘사를 집 밖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사와 함께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독일은 패망했고 조조가 의지할 어른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사랑을 받아 사랑을 이어가기에 인생은 아름다운 법입니다.
<기생충>, <조조 래빗> 모두 제겐 블랙코미디였고요, <기생충>이 관람 뒤 찝찝함과 씁쓸함을 느끼는 영화였다면 <조조 래빗>은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함을 남기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여러 영화는 보는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도 아름답습니다.
※ 쓰다 보니 조조의 친구 요키를 빼 먹었는데요. 감초와 같은 인물입니다. 조조의 가장 좋은 친구 자리를 히틀러에게 내준 안쓰러운 친구고요, 자잘한 사고를 치며 관객에게 웃음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편견 없이 순수한 눈으로, 영화 밖 인물처럼 세상(유대인, 연합군 등)을 가장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조조, 요키... 참 보는 재미가 있는 아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