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ven Lim Jun 10. 2020

김연경은 아마추어!?

배구 없이는 못사는 애호가의 결단 “행복하자”

요 며칠 배구여제 김연경의 복귀로 스포츠계가 뜨겁습니다. 특히, 기존에 받던 몸값의 20%에도 미치지 않는 연봉으로 계약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봉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프로 세계에서 좀처럼 발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김연경, 그녀는 아마추어입니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마주친 아마추어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실력이 미숙한 사람이 아니라, 라틴어 어원 ‘amator’의 뜻대로 대상을 사랑하는 자이자 애호가라는 게 바른 해석이란 설명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생각하면 김연경은  아마추어입니다. 배구를 정말 좋아하고 당장이라도 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생애 마지막이 될 올림픽에서 멋진 경기를 펼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환경은 여의치 않았지요. 프로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단 곳은 여럿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배구를 즐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아마추어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래도 수억대의 금액을 받기에 아마추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따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몸값으로 자신의 위상이 증명되는 프로의 세계에서, 게다가 아무리 많아도 더 가지면 좋다는 돈 앞에서 그녀는 다른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상금 등 금품을 받지 않는 것은, 상금 수령이 목적이 되어 애호가로서의 순수성을 잃고 단순히 돈을 좇는 자로 전락하는 걸 경계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태도를 덕으로 삼는 아마추어리즘, 김연경은 확실히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건 기적입니다.

금액 협상의 측면에서 보면 김연경의 완벽한 패배입니다. 흥국생명은 프로구단으로서의 제안을 했습니다. 우선협상권이 있는 선수를 재력이 더 풍부한 다른 팀으로 보낼 수는 없었고, 세계 최고 선수에 대한 나름의 대우도 해야 했습니다. 김연경이 우리 팀이 되면 좋고,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쉽긴 하되 큰 손해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유사한 상황 속에서 프로구단이 선수를 너무 배려하지 않은 제안을 건넸고, 선수 또한 프로로서 대응함으로써 결렬됐던 기성용 사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연경은 달랐습니다. 다른 선수들을 위해 자신이 제안받은 금액보다도 더 연봉을 낮추는 완전한 패배의 길을 선택했고, 돈이 아닌 행복을 채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돈으로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는 프로 세계라는 것,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 남이 내리는 평가에 연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그 기준을 뛰어넘는 위치에 존재하면 아무것도 아닌 법이지요. 그녀는 본연의 아마추어가 됨으로써 프로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정말 즐거웠던 기억은, 다소 고되지만 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서 제가 이 업무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였습니다. 공은 누가 가져가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금전적으로 괜찮은 이적 제안이 왔을 때도 ‘내가 시장에서 이 정도 평가를 받는구나’ 흐뭇해하며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급여와 직책의 보상만을 바라는 사람이 되어 일을 향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을 지닌 아마추어의 모습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애호가로서의 진정성을 잃은 이가 일하는 기쁨과, 과정에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어불성설입니다. 어쭙잖은 프로의식이 더 즐기며 발전할 수 있는 저를 멈춰버리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쪼금은 더 제 몸값이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항간에는 방송 출연료와 광고비로 김연경의 부족한 연봉을 채워줄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돈 문제라는 이야기지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그렇더라도 뭐 어떻습니까? ‘김연경의 삶’이란 본업 측면에서 보면 배구도 광고도 결국은 부캐이고, 좋아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아마추어인 그녀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너무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겨울 배구잔치겠지만, 저는 김연경의 스파이크를 무척 흥분하며 볼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를 응원하며 오늘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6월은 원래 덥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