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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Jun 21. 2020

자전거가 늙었다?

장비 탓? 실력 탓!!

“아무래도 이제 자전거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중년기 체력 저하와 우울증 방지를 위해(?) 교회에 함께 다니는 비슷한 연령대 두 분과 함께 자전거를 탄 지 3년째를 맞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강 자전거축제와 고성 그란폰드를 다녀온 재작년 대비 지난해엔 절반도, 올해엔 또 그 절반도 자전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햇수로는 3년입니다.     


당시 셋이 같이 경기도의 모 공장을 방문해 동종의 자전거 3대를 구매했습니다. 어린 시절 삼천리 브랜드 제품과 신문 정기구독자에게 선물했던 자전거만 알았던 저로서는, 100만원이 넘는 자전거를 처음 제대로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스포츠든 제대로 하려면 돈이 든다는 걸 깨달았었지요. 그 후 저희는 즐겁게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주말 아침 우리를 제치고 나가는 무리들이 꽤 늘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비슷하게 페달을 밟는 듯한데 쭉쭉 뻗어가는 겁니다. 여성 라이더들마저 손쉽게 앞서가는 모습에 의기소침해지려는 찰나, 불현듯 눈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건... 

자전거가 부쩍 늙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놈이 헉헉댔기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거, 더 처량한가요?^^)     

이제 자전거 좀 탔다 싶으니 전문가들의 세계가 보이는 거죠. 제 생애 가장 비싼 자전거로 길이길이 남을 줄 알았던 최고급 자전거였는데, 이 바닥에선 기본 중의 기본 모델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제품을 살 때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하룻강아지 수준의 초보였기에, 범의 세상이 있음을 모르고 귓등으로 스쳐왔던 것입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심각하게 장비 교체를 논하던 셋. 최소 두 배 이상 더 나갈 새 자전거 구매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아내들이 윤허하지 않을 것이란 장벽 앞에 결국 말을 멈췄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허락된 한강 즉석 라면을 마구 흡입했습니다.^^     


냉정히 따지자면 자전거가 아닌 제 몸이 나이 든 것이고, 두 친구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줘서 적당히 따라가는 것일 뿐 제 실력은 아직 장비를 탓할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페이스 분배나 경사도에 맞춘 기어 교체, 정속 페달질 등 이 자전거만으로 충분히 연마할 수 있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이 자전거를 타고 도달할 수 있는 최고 평균 속도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실 얘(자전거)보다 제가 더 빨리 늙어버릴까 봐 고민입니다!     


솔직히 누가 나를 제치고 간들 뭐가 문제겠습니까? 아침에 함께 자전거에 오를 동료, 머리 맞대고 작당 모의할 이야깃거리, 팔팔 끓는 즉석라면을 음미할 수 있는 미각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 충만함이 제게 시속 5km를 더할 수 있는 기운을 줍니다. 건강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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