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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Jun 18. 2020

“마음이 아플 땐 대화를 해요”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사랑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면

톰 행크스는 할리우드 배우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입니다. 왠지 강한 믿음을 준다고 할까요? <포레스트 검프>를 비롯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터미널>, <캐스트 어웨이> 등 작품 속 그처럼 어눌한 듯하면서도 재치 있고, 올곧게 진실을 전하는 캐릭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그의 특성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것뿐인데, 실제 주인공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듯한 마력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포스터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친 그 순간, 저는 피해갈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주연 톰 행크스'만 보고 바로 선택했습니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 프레드 로저스가 등장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을 오랫동안 진행해왔으며, 친절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미국 내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인물입니다.

에스콰어어 잡지사에서는 영웅 특집호를 준비하며 로저스 인터뷰를 실을 계획을 하고, 로이드 보겔에게 400자 인터뷰 기사를 쓰라고 지시합니다.

저명한 인사에 관한 고발 기사를 주로 써왔던 로이드 입장에선 영웅담 인터뷰 명령이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게다가 누나 결혼식장에서 어릴 적 가족을 버리고 나간 아버지를 만나 주먹질까지 한 터라 마음이 더욱 상해 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는 해야 하는 법! ‘로저스도 그동안 내가 취재해왔던 다른 유명인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피츠버그로 향합니다.     

영웅 로저스 아저씨와 기자 로이드의 만남, 둘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촬영장에 도착한 로이드는 1시간 넘게 촬영이 지연 중인 을 목격합니다. 뭔가 마음 상해 있는 아이를 풀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로저스가 계속 대화를 시도한 끝에 아이 마음이 열리고, 웃는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로저스는 기존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로이드. 그는 로저스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돌아보고,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의 마음과 대면하게 됩니다. 로이드도 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변화할 수 있을까요?      


“용서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그 사람을 놓아주는 거예요. 이상하지만,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을 용서하기가 가장 어렵답니다.”

로이드가 가진 사람을 향한 분노의 근원은 아버지입니다. 그는 병든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나 몰라라 내 버려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에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고,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생각하기도 마주하기도 싫습니다. 그가 저명인사의 이면을 들춰 고발하는 기사는 어쩌면 아버지로 인한 화를 풀어내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저스 아저씨의 이웃 로이드, 사랑하는 이를 용서하지 못해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로이드 내면의 불안요소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가정을 이뤄 아내와 아이가 생겼는데도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여전하고, 미처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일을 핑계대며 (마치 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아내의 어려움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선 다 자라지 못한 아이의 상태 그대로입니다.

어른이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일테죠. 함께 하는 세상에서 서로를 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익히 잘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남이 아닌 피를 나눈, 부모 자식이기에 더더욱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어디 그만 그렇겠습니까? 이런 아픔을 달고 사는 우리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로저스에게서는 빛이 니다. 무뚝뚝했던 아이가 입을 열고, 지하철에서 만난 승객들이 로저스 TV 프로그램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로이드 아내조차 "동심을 지켜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마도 로저스는 특별한 존재인 듯합니다. 아마 그는 처음부터 온화하고 자비로운 품성과, 아픈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을 타고 난 성자 같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남에게 얘기하지 않거나, 항상 시험하려는 아들들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슬플 때도 분노하는 때도 생깁니다. 다 큰 어른이라고 해도 매번 텐트를 잘 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 없는 삶은 없는 법입니다.

로저스는 삶 가운데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마주 서는 인물이며,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참을 수 없이 힘들어질 땐 찰흙을 두들기거나 숨이 차오를 때까지 수영하고, 피아노 건반을 쾅쾅 눌러대기도 하면서 갈무리했습니다.

TV 방송 녹화가 끝난 후 홀로 피아노를 치다 '쾅쾅' 건반을 내리치는 로저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온화하고 친철한 로저스는 영웅의 본성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를 통해 자기 앞의 아이를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귀 기울이며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로이드와 대면하기 전에도 그가 모든 기사를 살펴 읽고, 상처 난 그의 얼굴과 심리상태를 주의 깊게 바라봤기에 진실한 대화가 가능했지요. 완벽함을 갖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플 땐 대화를 해요.”

로이드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날까 봐 그동안 피해왔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와 이야기할 시간과 자리를 마련하려 해도 외면했습니다. 자칫 아물지 않은 상처가 커져 큰 질병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피할수록, 다가서는 아버지에게 주먹질할수록 마음은 더 아파왔습니다.

그런 로이드에게 로저스 아저씨가 다가섭니다. 그윽하면서도 애정 넘치는 눈빛으로, 싸우다 맞은 코의 상처보다 더 아팠을 로이드의 마음에 말을 겁니다. 그리고 대답하길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만 마치고 피하려 했던 로이드였지만, 차츰 마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TV 녹화장에서 봤던 아이처럼, 그 역시 로저스를 통해 대화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조금 더 늦었더라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조차 못 할 뻔했는데, 로저스는 정말 영웅인가 봅니다.

역시 가족은 함께해야 아름답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영웅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고, 기도를 통해 강해졌습니다. 그가 로이드 가족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되새기며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로저스의 조용하면서도 부단한 열정이 로이드와 가족을 다시금 사랑으로 엮고, 또 하나의 이웃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숙한 부분이 있는 어린이 같습니다. 나는 다 컸다고 여기지만, 신이 보기엔 장난감 마을 속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진짜인지도 잘 모르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실제로 저도 텐트 설치를 못 해서 남들 다 가는 캠핑 가는 것도 겁냅니다. 이해와 포용을 말하면서도 정말 짜증 나는 상대를 만날 때면, (눈앞에서는 아니지만) 엄청 험하게 뒷담화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천인공노할 잘못을 저지르고도 배시시 웃으며 다니는 사람을 보면, 나와는 크게 상관 없음에도 분을 참지 못하겠습니다. 이렇듯 부족함이 넘칩니다.

어쩌면 우린 장난감 마을 속을 사는 부족함 많은 어린아이일지 모릅니다. 신은 우리에게 이웃이라는 조력자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대면하면, 그리고 꺼내 놓을 수 있다면 그건 곧 별것 아닌 게 됩니다. 그땐 분명 로저스 아저씨 같은 분이 옆에서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같은 이웃이 있기에 세상은 참 살 맛이 나고, 톰 행크스 같은 배우가 있기에 영화는 참 볼 맛이 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함과 위로를 맛본, 기분 좋은 영화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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