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영화를 시청할 땐 보통 아내와 함께합니다. 주말 이른 아침 그녀가 잠 깨기 전 홀로 보는 것도 즐기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왠지 옆자리가 그리워집니다. 그런 아내가 2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방송작가 일이란 게 한 번 발 디디면 밤낮없이 이어져서인지 꽤 피곤해 하네요. 그래서 덩달아 요 며칠 제가 영화를 보는 횟수도 확 줄었습니다. 삶의 곳곳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 아내와 함께 본 영화가 <너는 달밤에 빛나고>입니다. 여전히 하이틴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선택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 포스터 편집본. 소년 소녀의 풋풋한 모습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마미즈는 고교 2학년 여학생으로, ‘발광병’이란 희귀병에 걸려 입원해 있는 시한부 환자입니다. 몸이 밝게 빛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병이지요. 반 학우들은 그녀에게 전해줄 롤링페이퍼를 기록하고, 타쿠야가 그 전달 역할을 맡게 됩니다. 병실에서 마미즈가 아끼던 스노우볼을 깨뜨린 타쿠야, “하고 싶었던 일을 대신하고 전해 달라”는 마미즈의 요청에 버킷리스트 대리 수행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둘은 가까워지고,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생깁니다.
사실 타쿠야는 이미 이 병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나의 남자친구가 발광병으로 죽었고, 누나도 그를 따라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누나처럼 타쿠야도 발광병 환자와 인연을 맺다니... 참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가까워지기 전 뿌리치려고도 했지만 늦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깊어지고 함께하고픈 바람은 점점 커집니다. 하지만 마미즈의 발광병은 오히려 더 빠르게 악화되고, 그녀의 몸은 빛나기 시작합니다. 마미즈를 잃으면 자기 삶의 의미도 사라질 것 같은 타쿠야! 그 또한 누나의 길을 따라가게 되는 걸까요?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문제(?) 있는 인물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상대의 사랑 얘기! 가슴 아픈 순정영화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할까요? 익숙합니다. 발광병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주인공 부모,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신선한 긴장감을 주지만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닮았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 <A Walk To Remember>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어찌 보면 다소 식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를 보면 꼭 <워크 투 리멤버>가 생각납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교회에 다녀서 그런 걸까요?
그래도 저는 참 좋았습니다.
맑았던(실제로는 그렇게 맑진 않았을 겁니다^^) 중·고교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그땐 슬램덩크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며 흥분했고, 반 대항 축구시합 하나에 온몸을 내던졌습니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별밤에 주파수를 맞췄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녹화해가며 봤지요. 순수한 열정의 시대였습니다. 달밤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품은 그녀는 그렇게 빛이 났고, 모든 걸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발광병 정도는 결코 청춘 남녀의 사랑을 막는 걸림돌이 되지 못합니다. 영화 속 짧게 나온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철천지원수란 집안 내력이 둘의 장애물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멸을 앞둔 친구를 끝까지 사랑한 타쿠야도, 셰익스피어의 연극처럼 동반 죽음을 택했던 누나도 지고지순함을 품은 그 시절의 모습을 잘 나타내줍니다. 그 시절 우리는, 아마도 반사판 없이도 찬란히 발광했을 겁니다.
영화 속 마미즈는 발광병으로 인해 빛나지만, 고교 시절 우리는 그냥 빛났습니다! 아마도.
인생은 역설적입니다. 새옹지마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해, 어차피 할 수 없다고 적어놓은 버킷리스트가 낯선 친구로 인해 실행됩니다. 그리고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영상을 통해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이스크림 음료를 먹는가 하면, 타쿠야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느낌도 갖습니다. 체념했던 자리가 사랑하는 친구 타쿠야가 옆에 있는, 생을 향한 강력한 의지가 발휘되는 곳으로 바뀝니다.
자살한 누나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던 타쿠야 역시 딱히 살려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곧 죽을 마미즈를 동경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진실한 애정이 생기면서 ‘이 아이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삶의 욕구가 피어오릅니다. 사랑은 삶의 역설적 생명력을 일깨우는 존재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야 합니다.
마미즈가 없는 타쿠야의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더는 발광하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줄리엣과 누나처럼 마미즈를 따라감으로써 지고지순한 사랑을 마무리 짓는 게 나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쓰라린 시련이나 비애가 없었던 저조차도 과거를 돌아보면 ‘차라리 그냥 놓아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걸 고려하면, 타쿠야로선 자기에게 삶의 희망을 준 존재가 사라지는 걸 절대 산 채로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또한 마미즈를 만나 사귀었기에 생긴 타쿠야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돼. 살아서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이 어떻게 계속되는지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네 속에서 계속 살아갈 나에게 앞으로도 알려 줘.”
마미즈의 마지막 부탁은 너무나 무겁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타쿠야 마음속 그녀의 삶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타쿠야가 살아있는 한, 아직 살아있는 마미즈의 버킷리스트는 타쿠야를 통해 계속 실행되고 둘이 함께 하는 삶은 이어질 것입니다.
타쿠야가 살아가는 한 그의 마음 속에서 둘은 이렇게 함께할 것입니다.
그래서 타쿠야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늠름한 의대생이 됐습니다! 머지않아 ‘네 병을 고치게 됐어’란 메시지를 마미즈에게 전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함께함’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곁이든 마음이든 존재감을 느끼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때마침 <사라진 시간>, <결백> 등 신작들이 보이네요. 제 아내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며 아낌없이 즐겨야겠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X수작이야” 하는 목소리가 진동하는 것 같습니다.^^
※ 타쿠야에게 전하는 사족 한 마디. 청춘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부디 제발 ‘내가 이러려고 살아남았나’ 비관에 빠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