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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ul 31. 2022

첫 비행은 노을 여행

여행기1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막혔다가 요즘 다시 열린 추세다. 올해 여름휴가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다시 확산세를 보이는 코로나 때문에 마음을 누른다. 아쉬운 마음에 처음 간 해외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본다.


첫 해외여행을 갔을 무렵, 내 일상은 아픈 것 때문에 다이내믹했지만 반면 아팠기 때문에 굉장히 단조롭고 지루했다. 집, 학교, 병원 다시 집, 학교, 집으로 이어지는 생활이 전부였다. 큰 일탈을 한 경험도 없고 술을 먹지 않으니 남들 다 만드는 술 먹고 쓴 흑역사도 없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고요처럼 아파서 겪는 태풍 후에는 대부분 조용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런데 대학생 시절에는 가끔 돌을 던져 파동이 일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이 돌은 주로 외부에서 던진 돌이었는데 이땐 학교에 가는 것, 집에 얌전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나가기만 하면 작은 사건 사고가 생길 때였다. 가령 물건을 사면 매번 불량품이 걸려서 교환하기 일쑤였고, 천 원짜리 볼펜을 사던 오천 원짜리 볼펜을 사던 하루 쓰면 이상하게 고장이 나버리거나,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리려는 순간 어떤 할아버지가 내가 탄 조수석을 연달아 3번 들이받는 사고가 난다거나(자동차 경적을 울려도 계속 들이받았다), 주방 선반에 있던 작은 돌절구가 갑자기 떨어져 무릎을 다친다거나 하는 크고 작은 사건이 집 안팎에서 벌어졌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 근황을 물으면 나는 단조로운 일상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크고 작은 사건을 혼자 수습하느라 성가시고 지루한 나날을 보낸다고 답하면 "너는 인생에 구름이 많니" 하며 웃었다.

이런 생활에 정점을 찍고 나서 그 뒤로 잠잠해질 때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그때 여름휴가 겸 졸업여행으로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생애 첫 비행기를 타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픈 사람에게 그것도 심장이 툭하면 말썽을 부리는 사람에게 비행기는 큰 모험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시술 후 재발 없이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 비행기를 타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10,000m 이상의 상공에 나를 띄워도 부정맥이 나타나서 회항할 일이 벌어지지 않을 상태를 기다렸던 것이다. 처음 가는 여행인 만큼 무리가 될 비행시간이 아니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가 삼대 석양으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로 정했다. 노을 노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더니 첫 해외여행으로 노을을 보러 간다며 주변 사람들도 축하해주는 내 첫 해외여행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풍경

내가 노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위로받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입원하면 오후 회진 이후 병실 창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하늘이 좋았다. 그래서 요즘도 최악의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노을을 보면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 저 하늘을 보았으니 된 거야 정말 아름다워 볼 수 있고 저 예쁜 노을이 있는 것은 다 괜찮아'라고 스스로 토닥인다.

우선 여행을 위해 도청에 가서 여권을 만들었다. 엄마의 여권도 신청했다. 정신없이 살면서 20년 넘게 아픈 딸을 돌보며 살던 엄마도 비행기 한번 타보지 않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 모녀의 설레는 첫 해외여행에 한 명이 동참했다. 같이 운동하면서 알게 된 Y 씨였다. Y 씨는 내가 여행을 가려고 한 그 해 어머니상을 치렀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돌보던 Y 씨는 어머니를 보낸 해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싫고 다 털어버리고 싶다며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를 보낸 사람과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에 신난 사람과 그 사람의 엄마와 함께한 여행이라는 조합. 이 낯설면서도 어쩐지 괜찮을 것 같은 여행 팀은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3박 5일 일정에서 이틀은 이동시간, 3일 정도가 여행하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신났는지 3일 여행 동안 이동 중 틈틈이 핸드폰 메모장에 일기를 썼는데 집에 와서 합쳐보니 A4로 10장 가득 채운 여행일지를 써놨었다. 일지의 처음은 구름 많은 내 일상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여행 첫날, 인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자연(월경)이 시작되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기 위해 산 수영복, 수영을 못 해서 산 물놀이 튜브까지 여행 가서 쓸 생각에 들떠서 고른 그 귀여운 물건들이 가방에 있는데 발만 담가야 한다니... 서둘러 진통제 하나를 꺼내 먹었다. 버스로 가는 3시간, 비행하는 5시간 동안 내 배와 허리가 무사하길 바랬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뜬다! 뜬다! 오~~~ 떴다 떴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두 모녀는 손을 꼭 잡고 웃었다. 5시간 동안 하늘을 실컷 보았다. 내가 날고 있는 상공은 밤이었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에서 이름 모를 도시의 불빛을 보았다. 비행기 꼬리마저 예뻐 보여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그 새벽 공항에는 전부 한국인들뿐이었다. 영어를 할 필요가 없이 한국어가 들리는 방향으로 가면 그냥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여행 중 쓸 유심칩을 사고 미리 마중 나온 가이드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맞는 첫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좋았는데 이번에도 작은 불행이 터졌다. 가져온 휴대폰 충전 케이블 2개 모두 고장이 나 있었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도 잘 되던 것들이었다. 여행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서둘러 호텔 프런트에 갔다. 어댑터는 있는데 케이블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케이블을 살 수 있는 이마고 몰이라는 마트가 나온다고 했다.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던 찰나에 외국인 부부도 택시를 타고 이마고 몰에 간다고 이야기 중인 것을 들었다. 나는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서 겁 없이 외국인에게 갔다.

"이마고 몰 가세요? 우리도 가는데 같이 타고 가서 택시비 나눠 낼까요?"

뉴질랜드에서 온 그 부부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호텔에서 6인이 탈 수 있는 택시를 불러주었다.

난 무사히 충전기를 사고 돌아왔다. 그런데 잠잠한가 싶었던 사건이 또 터졌다. 신나게 관광을 마치고 아로마 마사지까지 받고 숙소에 와서 바로 잠을 자려고 숙소 문을 열려는 순간, 문이 안 열렸다. '내가 촌스러워서 카드키가 익숙하지 않은 것인가?' 다시 시도해보았다. 안 됐다. 엄마가 나섰다 역시 안 됐다. 같이 간 Y 씨가 해보아도 안 됐다. 또 호텔 프런트에 갔다.

"문이 안 열린다. 키가 안 먹힌다."

"마스터키를 드릴 테니 다시 해보라"

나는 짜증을 내며 숙소로 돌아와서 마스터키를 써봤다. 이번에도 안 됐다. 다시 프런트에 갔다.

"안 돼요!" 긴말할 영어 실력도 아니었다. "No!" "I can't open!" 직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낮에 만난 직원과 달리 불친절했다. 저 직원과는 일 해결이 안 되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텔 방문이 안 열리는데 직원들 대처가 영 시원찮아서 어떻게 할지 몰라 연락했다 말하니 자기가 바로 호텔에 연락하겠다고 답이 왔다.

잠시 기다리니 한국말을 하며 어떤 직원이 나타났다. 한국을 떠난 지 48시간 정도 되었는데 한국어를 들으니 엄마는 구세주를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터키를 받았는데 이것도 안 열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국말을 하는 직원은 우리에게 불친절했던 직원에게 영어로 화를 내며 키를 냅다 던지고 다른 키를 들고 앞장서서 갔다. 내 대신 화를 내주어 속이 시원했다. 한국말을 하는 그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이 키로는 금방 열릴 거라고 자신 있게 걸어갔다. 그러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여행에 와서 또 이런 큰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는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공구를 가져와서 문을 뜯는다고 했다.


그렇게 그 흔한 드라이버 같은 것이 하필 없어졌다는 호텔에서, 코타키나발루에서 2번째로 좋다는 그 호텔에서 한 시간 넘게 숙소 앞 복도를 서성거렸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자 호텔 VIP만 간다는 bar에 우릴 데려다주었다. 그곳에서 쉬고 있으면 다 수리하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이제 잠도 달아났고 몽롱한 정신으로 망고 주스를 마셔대며 3시간을 기다린 끝에 방문이 열렸다.


호텔에서는 사과의 의미로 스위트룸으로 바꿔 주었다. 더 잘 된 것인가? 첫날 호텔 로비에서 스위트룸이라고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 '저기에서 하루 자면 좋겠지?' 생각했는데 이런 일로 돈을 추가하지 않고 자게 된 것이다. 호텔 측에서는 다음날 아침에 무보다 맛이 없지만 무척 빨간 사과와 초록색 파파야를 어젯밤 일은 정말 죄송했다면서 보내주었다. 가이드는 자신이 다른 여행객을 맞이하느라 와보지 못했다면서 한인 식당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 연일 사소한 일이 생긴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엄마와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말했다.

"이곳에 모든 나쁜 것들을 다 털고 오자 한국에 가면 다 좋은 일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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