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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Aug 10. 2022

누수 없어요?

내가 다니는 일터를 청소하시는 여사님을 매일 만난다. 특히 화장실 가는 길에 자주 만난다. 심장 때문에 먹는 약이 화장실을 자주 가도록 하니 더 자주 만난다. 나는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한다. 어느 날은 비슷한 나이대의 엄마 생각이 나서 하고, 어느 날은 더워 보이셔서 고생하시는 것 같아 인사를 하고 어쩔 땐 이런 분이 계셔 내가 깨끗한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한다.


내가 인사를 하면 여사님은 가끔 내게 먹을 것을 주신다. 살구나 토마토 같은 것이다. 나는 감사히 받아 잘 먹는다. 나도 한번 내가 마시는 두유를 드렸더니 자기가 내 아침을 먹는 것 아니냐며 미안해하셨다. 나는 아침 아니고 간식인데 많으니 괜찮다고 했다. 여사님이 하루 쉬는 날이 있었다. 자기가 없어서 청소가 깨끗하게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을 잘해놓긴 할 거라 말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화장실 가는 그 짧은 길목에서 아주 짧게 나누는 대화지만 정겹다. 마스크 쓰고 청소하기 무척 덥고 힘든데 안 쓸 수 없어 난감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그 더위와 힘듦이 이해가 가지만 뭐라 해드릴 말이 없어 안타깝다. "아이고 그러게요 날이 왜 이리 더운 건지요" 할 뿐이다.


오늘 아침 여사님이 우리 과에 들어오셨다. 난 오신 줄도 모르고 일을 하기 위한 자료를 고개 숙여 보고 있는데 내 자리에 스윽 오셨다. 다가오셔서 조용히 내게 말을 거셨다.

"여기 누수 없어요?"

나는 일초만에 "네네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웃었다. 마스크에 가려졌겠지만 챙겨주어 감사하단 의미였다. 밤새 비가 많이 와서 걱정되어 물어보셨나 생각한 것이다.

여사님은 뭔가 섞연찮으신 듯 "그려요?" 하고 가셨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창가 쪽을 보지 않은 것 같았다. 밤에 비가 많이 내렸고 오늘 내내 비가 올 거란 예보에 한번 확인을 해봐야지 하고 창가를 보는 순간! 세상에 창문 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해맑게 "없어요~"라고 대답했으니 아차 싶었다.


난 뛰어가서 여사님을 불렀다.

"여사님~! 여기 누수 있어요 못 봤어요!"

내 말에 여사님은 "그려 거기 누수 있었어 내가 저번에 봤는데~" 하시면서 시설 담당 직원분들을 불러서 여기 누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황급히 같은 과 사람들과 물을 닦았다. 여사님은 청소할 때 누수를 보셨다고 하셨다. 기억이 가물가물 여기였나 저기였나 하셔서 물어보았다고 했다.


나는 여사님께 감사인사를 여러 번 했다.  항상 청소를 깨끗하게 해 주시는데 누수까지 보시고 챙겨주시다니 혼자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런 분들의 숨은 배려가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마칠 수 있게 했다는 생각.


어제 엄마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나는 괜히 무언가 내가 많이 모자라단 생각에 울적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상 속에 따뜻함을 마주했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나도 그래야지 하고 의지를 다잡았다.


많은 비로 침수 피해가 심각하다. 지금 내가 있는 지역으로 비구름이 내려와 엄청난 비가 내린다. 방금 전에는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고 있다고 차를 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럴 때는 차가 없는 뚜벅이라 맘이 편하다가도 내일 아침 출근길이 조금 걱정 된다. 재난문자로 산사태와 홍수 문자가 오고 난리도 아니다. 엄마는 아직 코로나로 고생 중이시다. 코로나 시국도 날씨도 무엇 하나 편하지 않고 쉽지 않은 요즘이다. 오늘 퇴근길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도록 비를 맞았으니 내일 출근길은 우비를 챙겨야겠다. 우비나 우산 같은 존재들로 잠시 맘을 놓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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