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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Dec 18. 2021

냉정과 열정

심장 부정맥

부정맥 시술에는 현재 두 가지 시술법이 있다. 한 가지는 내가 받은 전극도자절제술이고 다른 한 가지는 냉각 풍선도자절제술이다.


내가 시술을 받기 전날 밤. 시술 준비를 위해서 소독약으로 샤워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시술실에 들어갔다. 시술실에 도착해서 각종 기계장치를 몸에 연결한 후 카테터가 들어갈 부위를 절개했다. 쇄골하정맥과 양쪽 사타구니(서혜부)를 통해서 도자를 넣기 위해서다. 맨 마지막으로 손목과 발목을 침대에 고정한다. 시술 중 환자가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술이 시작되었다. 전극도자절제술이라고 듣고 그냥 몇 번 지진다는 소리를 듣기만 했지 그 정도가 어느 정도 일지 감이 안 온 상태이다. 실감은 시술이 시작되고 알게 되었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다는 사실을 그리고 평생 느꼈던 부정맥 증상으로 느낀 통증의 20배는 되는 통증을 느꼈다. 날카로운 못을 등과 앞가슴에 조준한 뒤 망치로 동시에 내려치면 그런 통증과 같을까? 엄살이 심한가? 그런데 그 통증에 열감이 더해져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나는 이때 소리를 지를 수도 숨을 크게 들이쉴 수도 없다. 시술 전 안내받은 주의사항이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크게 숨을 쉬거나 움직이면 시술하다가 다른 부위를 지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했다. 나는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움직여서 다른 곳에 엉뚱하게 도자가 닿는다면 심장 구조물을 건드리거나 다른 곳을 지져서 전도 장애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시술 성공률이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숨을 죽여 거의 숨을 쉬지 않고 마른입에 침을 모아 억지로 삼켜가면서 안간힘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 시술하는 의사 선생님은 행여 내 다리가 움직여 시술할 때 위험할까 봐 시술하는 동안에 내 오른쪽 허벅다리를 힘껏 누르고 계셨다. 그 마음이 나만큼 간절함을, 누르는 힘에서 대신 전달받을 수 있어서 더욱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라디오 고주파의 뜨거운 열로 부정맥을 없애고 나서 시술이 끝났다. 한겨울 시술장은 들어갈 땐 참 추웠는데 시술이 끝나고 나니 온몸에서 흐른 땀으로 시트가 다 젖어있었고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보조 의사가 면으로 된 수건을 가져와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땀이 많이 났네 고생했어".


힘든 시술을 받고 몇 년이 지났다. 나는 부정맥 관련 최신 동향을 종종 찾아보는 취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냉각도자절제술이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관련 논문을 찾기 전이라 냉각 도자의 온도를 모르고 냉장고나 냉동실 정도의 차가움으로 부정맥을 제거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아 조금 더 기다리다 냉각으로 할 걸 그때 얼마나 뜨겁고 타들어 가는 것 같았는데..."라고


그러나 논문을 보고 그 말을 바로 취소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낮은 온도가 아닌 -75도 정도의 초저온이었다. 대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온도는 아니고 드라이아이스를 생각하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온도이다. -78도의 드라이아이스를 맨손으로 만지면 동상을 입을 수 있는 그 온도이다.


이러한 초저온은 고온의 열화상만큼 손상을 일으킨다. 나는 이 느낌을 대학원생 시절 초저온 냉동고에서 맨손으로 물건을 꺼내면서 알게 되었다(맨손으로 초저온 냉동고를 열어선 안 된다). 정말 손이 얼얼하고 심하면 뜨겁게 느껴진다.


냉각도자절제술 다시 정확히 하면 냉각풍선도자절제술은 풍선도자에 액체질소를 채워서 초저온상태의 도자를 만들어 심장 부정맥이 유발되는 곳에 위치시키면 고온의 전극도자와같이 심장조직의 어느 한 부위를 괴사시킨다.


다만 두 시술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면 하나에 색을 칠하는 과정을 두 가지 기법으로 한다고 생각해보자 한 가지 기법은 점묘화, 다른 한 가지는 넓은 붓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전극도자절제술은 도자를 심장 내 부정맥 유발 부위에 마치 점을 찍듯 한 점 한 점 점묘화를 그리듯 절제한다면,  냉각풍선도자절제술은 풍선 도자를 부정맥 유발 부위에 둥글리듯 하면서 조금 더 간편하게 시술할 수 있다. 따라서 전극도자절제술은 섬세하고 시술이 까다로워서 시술자의 능력과 경험에 영향을 받는 반면 냉각풍선도자절제술은 시술자의 경험에 영향을 덜 받는다. 또한 시술 후 재발률이 전극도자절제술보다 약간 낮아 꽤 우수한 시술법이다. 한편 다양한 부정맥 시술에 적용할 수 있는 전극도자절제술과 달리 냉각 풍선도자절제술은 주로 심방세동과 방실결절회귀빈맥을 치료할 때 쓰인다.


이렇게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고열과 저온이라는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기술이 사용된다. 정반대의 기술적 성질을 모두 발전 시켜 만든 의술은 시술자와 환자의 편의를 모두 고려해서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한쪽 기술만 좋다고 편향된 연구를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다양한 연구가 다각도로 진행된 후 쓰임에 맞게 적절히 융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조)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1602014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029554

https://www.nejm.org/doi/10.1056/NEJMoa2029980

https://www.ahajournals.org/doi/full/10.1161/CIRCULATIONAHA.119.04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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