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혜영 Dec 12. 2021

심장이 멈춘 자리에

침대를 내보낸 방에서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응급실 기억은 좋은 기억보단 꽤나 고통스럽던 기억이 많아서 그걸 극복하려고 자원봉사를 간 적 있다. 대학생 때 겨울방학과 학기 중 몇 번 갔다. 자주 가고 싶었지만 몇 번 못 갔다. 병원에서 와도 된다고 한 시간과 내 수업시간 일정 조율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응급실 자원봉사 학생을 더는 받지 않는다고 해서 중단했다.


아무튼 그때 의대생들이나 간호대생들 대상으로 열려있던 응급실 자원봉사에 전혀 관련 없는 과에 다니는 내가 자원봉사를 갔다. 병원 자원봉사 담당자가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다가 허락해주었다.


사실 응급실은 나에게 친숙한 공간이라서 낯설진 않았다. 덤덤하게 서있다가 알코올을 뿌려서 환자 베드 난간을 닦고, 신환을 위해 린넨을 깔거나, 신환이 오면 의료 기록을 CD에 담아 오는데 그걸 등록하는 것을 돕거나, 신환이 어디 자리로 가야 할지 위치를 안내하거나, 원내 약국에서 약을 받아오는 등의 사소한 업무였다. 가끔 물품 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침대 소독에 포함되는 일 중 하나였는데, 침대가 대부분 크게 더럽진 않지만 소생실 침대는 다르다.


소생실은 응급 중에서도 일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가 오거나 외상이 심한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이때 피를 많이 흘리는 환자를 일차 처치 후 수술실로 보내면 할 일이 있다. 피가 좀 많이 묻어있는 침대 위를 다음 환자를 위해서 빨리 소독하고 에어매트를 깔아 두어야 한다. 이때 응급실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과 의료진들과 빨리 손을 모아 재빠르게 세팅을 끝내야 한다.


이때 피를 보고 딴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냥 저건 물감이다 생각을 하고 빨리 청소해야 한다. 그러다 가끔, 아니 종종 안타깝게 소생실에서 유명을 달리한 환자를 마주친다. 그럼 그 환자가 영안실에 가기 전, 주사님들이 그분들을 옮기기 전 아주 잠시 소생실에서 나와 대기 공간인 복도 아닌 복도 같은 의료진 데스크 앞 공간에서 옮겨줄 사람을 기다린다.


나는 주사님들이 오시기 전까지 그 앞에서 잠시 자리를 지켜달란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보호자도 옆에 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기분은 묘하다.

환자는 방금 전까지는 살아있었는데, 주검이 되어 흰 천으로 온몸이 덮여있다.

그리고 환자를 병실, 검사실 혹은 급하게 수술실 이동이라는 말이 아닌 영안실, 장례식장 등의 용어가 나온다.

나는 하얀 천으로 감싸진 침대 위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때는 생각을 안 해야 한다. 옆에 보호자가 울고 불고 해도 나는 벽이다 로봇이다 기계다 생각하고 서있어야 한다.

가끔 너무 불안하다며 보호자가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말없이 손을 내준다. 뭐라고 위로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겠나 그냥 묵묵히 잡고 있어 준다.


주검이라 하기에는 분명 방금 전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았고, 시체라 하기에는 전혀 시체라 부르고 싶지 않은 그냥 잠깐 흰 천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있는 그냥 자는 것 같은 사람

그러나 심장이 멈추면 사람과 사물 사이 그 경계에 있는 어떤 정의를 내리기 힘든 대상이 된다.

빨리 어딘가로 치우거나 옮겨야 하는 그래서 그 옆에 잠깐 서 있는 것만으로 의료진들이 나에게 미안해하는 존재


환자가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환자가 채워진다. 어릴 때 수없이 본 광경이다. 밤새 울거나 어떤 이들은 욕을 한다. 환하게 불이 켜진 응급실의 밤은 기계음 혹은 방송 혹은 다급한 의료진 목소리가 들리고 환자들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천고가 높거나 공간이 크고 조명이 켜진 환한 곳에서 잠들기 어려워한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응급실 생각이 났다. 그리고 침대가 빠지고 새 침대를 사기 전까지 바닥에서 자야 해서 천고가 높아지니 응급실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를 내보낸 날 같이 일하는 사람도 휴직계에 들어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신해서 누가 올 것이란 대답을 들었다. 그 자리가 대체될 거라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사람은 물건 같구나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을 보내고 조금 나아진 사람을 보내면 차분히 잘 가라고 말할 틈 없이 살아있는 더 아픈 사람을 들여서 치료하는 응급실처럼 빈자리는 빠르게 대체된다. 다만 그 순간이 응급실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그 외의 평범한 일상은 조금 느리게 돌아가는 것일 뿐.


침대는 무생물인데 생물이 나간 기분이다. 옵션이었지만 몇 달간 함께한 것이라 조금 서운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