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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Aug 14. 2022

약과 독약 사이에서

디곡신(Digoxin)

7-8월에 길을 걷다 보면 아파트나 가로수 밑에 화려하게 핀 꽃을 볼 수 있다. 종 모양의 꽃 여러 개가 곧은 꽃대에 달려있는 디기탈리스라는 꽃이다. 화려한 색깔의 버섯은 대부분 독버섯이라는 말처럼 디기탈리스 꽃은 매혹적인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정말 강한 독성을 가졌다. 

디기탈리스


모든 약이 그렇듯 많이 사용하면 독이고 적정량을 사용하면 약이 된다. 디기탈리스 꽃의 잎은 독성을 가지고 있지만 소량 사용하면 좋은 약이 되었기 때문에 옛날부터 약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이 꽃으로 만들어진 약이 디곡신(Digoxin)이다. 


디곡신은 치료 계수(Therapeutic index)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에 약물 농도를 약간만 높여도 바로 독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하게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 농도 범위 안에서 심장 기능이 저하된 심부전 환자의 강심 배당체로 사용하여 떨어진 심장 기능을 회복시킨다. 또한 디곡신은 강한 심장 수축을 일으키기 때문에 심장이 정상 박동을 벗어나서 파르르 떨리는 부정맥 환자에게 이 약을 쓸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 부정맥 때문에 이 약을 사용한 적이 있다. 소아였기 때문에 약물 농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였는지 디곡신을 투약하니 부정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약은 잘만 사용하면 심장에 강력한 펀치를 날려 이탈한 심장 박동을 정상 궤도에 넣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정상 심장 기능과 박동을 가진 사람에게 이 약을 사용하면 독약으로 바뀐다. 과도한 심장 수축을 일으켜 심실빈맥과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다. 약은 많이 쓰면 독이 되고 적정량을 쓰면 약이 된다는 사실과 환자에게만 약을 써야 진짜 약으로 사용된다는 예를 보여준다. 심장질환이 없는 사람에게 디곡신을 쓴다는 것은 독살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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