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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Aug 22. 2022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의 사회생활

난 술을 못 먹는다. 내가 술을 먹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26개월 때부터 심장 때문에 병원 신세를 자주 졌으니 먹지 말라는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탄산음료, 카페인, 술은 주치의 선생님 엄명으로 금기된 음식이었다. 남들은 쉽게 먹고 즐기는 음식을 먹지 않으니  시간 많은 말을 들었다.

"부모가 애를 극성으로 키우네 그런  한번 먹는다고  어떻게 안된다. 겉은 멀쩡한데 과잉보호다."

성인이 되어서는

"술 안 먹고 고기 먹는 사람 신기하다. 제일 이해 안 간다."

"쟤는 커피랑 술을 안 마시니까.....(친해질 수 없다)"


 그런데  입장과 부모님 그리고 의사의 입장은 달랐다. 하나의 변수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 응급실에 가면 "이번에는  시에 무얼 하다 그랬어?!"  질문인데 행여나 먹지 말라는 음식  하나를 먹고 이런 상태가 되어 왔다면 얼마나 혼이 나겠나. 실제로 어릴   한번 친척 어른이 주신 박카스를 오렌지 주스 색과 같아서 모르고 마신  바로 증상이 나타나서 응급실에  적이 있었다. 나도 부모님도 주치의도 모두 기막히지만 어쩌겠나 기계  그래프가 먹지 말란 것을 먹은 대가로 미친  날뛰며 경고하는데..


하지 말란 행동을 해서 아프면 불호령을 들을 것이 뻔하니 시술을 하고 3년이 지날 때까지 카페인, 탄산음료, 술은 입에도  대고 살았었다. 시술  2,  3년이 안되었을 때다. 대학에 가서 있었던 지도교수님 주도로 열린  모임날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고 술을 강요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탄산음료도  마시고 내리 생수만 들이키는  모습이 의아했는지 교수님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개인적인 일을 말하는 것이 거북해서 망설이다가 설명을 못한  식사자리가 끝났다.


이후 학기마다 필수로 진행되는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시간에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제가 건강상의 이유로 , 카페인, 탄산음료는 병원에서 절대 먹지 못하게 해서 관리 차원에서 먹지 않고 있습니다."

그제야 교수님 표정이 풀리시면서 이런저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4 내내 면담 시간이 잡히면 강조하셨다.

"사회인이 되어서 회식이나 모임자리가 있을  술을 권하는 일이 생기면 참여는 하고 간단하게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자리를 같이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술을 먹어야만 하는 법은 없다. 만약  이유를 설명했는데 용납을  하는 곳이라면 오래 있을 필요 없고,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다."

"사람은 언젠가 살다가  번은 아플  있다. 이유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너를 오해하지 않을  있다."


 대학 졸업  작은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실천한 지도교수님의 지도 결과는 실패였다. 기쁨은 말하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말하면 약점이 된다고 했던가. 간략히 말한 건강상의 이유는 걸리지 않았던 병까지 덧붙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약점이 되었고, 비련하고 가련한 주인공 코스프레한다는 소리부터 정신 이상자라는 말도  되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뒤로는  건강상태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괜히 손가락질받으면서  모든 행동과 생각 하나하나  무시하며 깎아내릴  같았다.


다시 입을 닫았다. 최대한  사생활을 감추고 일에만 몰두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핑계로 누군가와 크게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최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마다 하나씩 자신의 지병을 자연스럽게 내게 오픈하는 모습에 나도 다시 용기를 내어  지병을 말했다.


술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에 합석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나는 그 소개가 좋았다. 술을 먹지 않는데 술자리에 낀다는 것은 타국에 온 이방인이 되어버리거나 재미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애쓰지 말고 편히 있어도 된다는 말에 마음이 정말 편해졌다.


나는 다시 이해받을  있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나도 타인을 배려하고 나와 다른 점을 충분히 이해할  있는 능력이 생기기를 바라고 있다. 과거의 내가 받고 싶었던 이해와 배려를 그들에게   있는 능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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