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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Apr 09. 2023

치과에 다녀온 후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서 아픈 것이 아니라 항생제를 먹어서 배가 아프다. 판막 질환이 있으면 치과 치료를 받기 전에 항생제를 먹는데 이 항생제가 이번에도 배탈을 일으켰다. 아픔을 가라앉히기 위해 탈탈 털어 넣은 진통제도 배 아픔에 한몫 제대로 했다.


언제 치아 뿌리가 부러진 것인지 금이 간 것인지.... 아프긴 했는데.... 지금 당장 뽑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뽑아 내도 무방한 치아를 조금 더 쓰기 위해 치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차라리 이를 뽑는 것이 나았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아팠다!!

“아이고 나 이제 나이 먹어서 아픈 거 못 참네 몇 년 전에는 마취 안 하고도 치료받았는데 아이고아이고~“하면서 얼음팩을 얼굴에 대고 온종일 누워있었다. 배 아파서 화장실 달려갈 때를 빼놓고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왼쪽 얼굴에는 얼음팩을 베고 온종일 누워있었다. 다들 산으로 숲으로 봄날을 만끽하러 갔다며 청설모 사진, 울창한 나무 사진들이 날아오는데도 나는 도토리 잔뜩 문 다람쥐처럼 볼이 부은 채로 누워있었다.


문득 나는 집순이 내향인이라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매번 내가 내향인, 내성적인 집순이라고 평가당하는 것도 오류가 있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가 놀고 싶어도 아파서 집에만 있어야 했도, 아파서 기운이 없으니 말을 많이 안 하게 되고, 다음날 학교나 직장에 갈 체력을 남겨두려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어야 하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내향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외향적인 사람도 내향적인 사람으로 자라야만 하는 환경요인이 작용하여 내 성격과 삶의 모양을 바꿔놓은 것이다. 너무 많이 웃지도, 울지도, 흥분하지도 말라는 병원의 주의사항과 함께 뛰지 말라 걸어 다녀라 하는 엄명 같은 말은 내가 이렇게 큰 일에도 무덤덤하고 언제나 천천히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 것이다.


확실히 나는 나가 놀 때 무척 재미있어한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매주 약속이 있으면 외향인이라는 어떤 밈을 보았는데 나는 신기하게 매주 약속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안 아팠다면 어땠을까?라는 말을 엄마에게 자주 묻는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땐 굉장히 밝았는데 아프고 나서 성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고 했다. 어릴 때는 장난기가 많았는데 점점 말수도 적어지고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졌다고 한다. 가끔 내가 장난을 치고 씩 웃으면 어릴 때 장난스러운 얼굴이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너도 안 아팠으면 꽤나 장난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 었을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치아 뽑으면 치아에 붙은 금은 나 주겠지?” 물었다. 엄마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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