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예민함이 나를 향한다면?
요즘에 HSP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Highly Sensitive Person
아주 예민한 사람
자신의 예민함을 인정하고,
그걸 강점으로 만들어가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러나 나 자신이 그 예민함을 통제할 수 없고,
갈 곳을 잃은 예민함이 나를 향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릴 때부터 예민했던 나는
항상 그 예민함의 칼날을 나에게로 돌렸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견디지 못할 만큼
괴로울 때도
때론 그 자극이 내게 너무 버거워 힘들 때도
남들은 다 견디고 산다며,
왜 이렇게 나약하게 견디지 못하냐며
나 자신을 탓하고 욕했다
밖으로는 표출하지 못한 채,
흔히들 말하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를 탓하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HSP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그걸 인정하고 나의 강점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올 무렵,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었다
왜냐면 내 얘기 같아서..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예민함을 강점으로 만들고,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예민함은
나를 괴롭히고, 상처 내는 예민함이었기에
내가 이때까지 나의 예민함을 쓰는 방법이라곤
날카롭게 갈아 나를 상처 내는 데에만 썼기 때문에
나는 이 예민함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손조차 댈 수 없었다
그저 단순히 나를 자각하고
날카로운 면이 조금이라도 뭉툭하게 무뎌지길 바라며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쉽게 그런 과정을 거쳐
강점으로 승화시킨 게 아닐걸 알지만
나는 내 예민함을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기엔
아주 지치고 무기력해져 버렸다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란 생각이
문득 들 때도 있지만
평생을 살아오며 이젠 나에게 얕은 생채기만을
남기는 예민함을 부러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란 생각에
지레 겁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겪고
용기를 내어 예민함을
자신의 장점으로 바꿔나간 거겠지
하지만 나에게 그 용기는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지도,
아니면 이미 내가 보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