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말 무렵 나는 극심한 불안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번아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조건은 결코 글쓰기에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는 자세에서 몸 곳곳에 만성적인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기보다는 고통스럽게 쥐어짜는 쪽에 가깝다. 이런 상태로 7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지난 몇 달간 극도의 몰입과 탈진을 반복해 왔으니 번아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이었고 설명도 가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불안과 무기력의 원인이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결과가 다가오는 것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실패자였고 그런 나에게 허용된 직업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방구석으로 밀려나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 내 일상은 당장 겉보기에는 별문제 없이 평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미 일반적인 경로에서의 모든 가능성을 상실했고 이제 굶어 죽는 미래를 막을 방법은 레버리지를 얻는 것뿐이다. 그런 내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수상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을 계속 이어 나갈지의 여부를 이 공모전의 결과에 맡기려고 했다. 이미 확정된 비참한 미래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미리 끝을 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의식의 표면에서는 이미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면의 무의식은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경보를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GPT에게 물어봤다. “이 글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수상할 수 있을까?” GPT는 ‘후보로 고려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제휴출판사 및 담당 편집자의 성향에 따라 크게 갈릴 수 있는 타입’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특히 아무리 브런치북 통계를 살펴봐도 조회수가 도저히 오르지 않았다. 후보로 고려되고 있다면 심사위원들이 계속 조회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식적으로 심사위원이라면 초반 1~3화에 집중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중간 회차는 드문드문 조회수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초반 회차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의 조회수는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미 탈락이 확정되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검색을 해봤지만 이렇다 할 속 시원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브런치에서는 관련 글을 두 개 발견했다. 하나는 나처럼 ‘출품한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지 않는데 왜 그런지 궁금하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상작 주인들에게는 따로 다 연락이 다 갔으니 아직까지 연락 없다면 미련을 버리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브런치 유저들이 스레드를 많이 한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스레드에서도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대상 수상작 심사위원을 두 번 해봤다.’는 글을 발견했다. ‘인문교양 쪽은 저자의 프로필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를 가장 상업적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지금껏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종합 부문’은 정말로 어떤 글이라도 제한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는 비공식적인 자격 제한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GPT에게 수상 가능성을 물어봤다. 이번에는 먼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뭔지 상세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다음에 수상 가능성을 평가시켰다. 그러자 먼젓번과는 전혀 다른 응답이 돌아왔다. “이 원고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실질적으로 수상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서점에서 어느 코너에 배치할지, 출판사가 마케팅 문구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애매하다.
독자 타깃이 불명확하고, 구매 동기가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 않는다.
개인 서사와 교양 해설 사이에서 작품의 정체성이 계속 흔들린다.
메시지의 핵심이 초반부에 다 나와버려서 회차가 누적될수록 반복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
교양서로 볼 경우, 저자가 이 주제를 다룰 자격이 있는가를 설득하는 신뢰 장치가 약하다.
먼젓번 질문에서 GPT가 내 글의 장점이라고 평가했던 특성들은 질문 방식을 바꾸자 모두 단점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왔다. 하지만 이 글은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글이었다. 나에게는 교양서나 실용서를 쓸 수 있는 전문적인 경력도 체계적인 지식도 없다. 그리고 나는 장면이 아닌 구조로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에세이를 쓸 서사를 떠올릴 수도 없다. 내 인생은 언제나 무미건조했고, 게다가 이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새로운 관계를 겪을 여지도 원천 차단되었다.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오직 내면의 사유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업의 많은 부분을 LLM이 지능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 자신은 철저하게 GPT를 행위자처럼 대하며 의존했다. 판단 절차를 분해하지 않고 지나치게 거시적인 내용을 한꺼번에 물어봤다. GPT가 내놓는 응답을 참고만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한 지금도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늙어 죽을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그전에 굶어 죽을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짜 희망을 만들어내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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