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를 선악의 문제로만 보면 잃게 되는 것

by 경계 Liminal

2025년 11월 20일 쿠팡은 약 4500개 계정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9일에 다시 3370만 건으로 정정 발표했고,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지기 시작했다.


미국 본사의 행정과 법무를 총괄하던 해롤드 로저스가 한국 법인의 임시 대표로 선임되면서 분노한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는 국회에 출석해서 통역 주도권을 가지고 다투며 청문회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고, “범인이 실제로 저장한 개인정보는 3,000건뿐”이라는 미심쩍은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소통을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푸른 눈의 대표이사는 ‘한국을 괴롭히는 나쁜 미국 회사’라는 이미지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국적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통쾌하긴 하지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 우선 현재의 빅테크로서의 쿠팡과 과거 스타트업 시절의 쿠팡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쿠팡은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상장했을까? 스타트업 시절 쿠팡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미국 증시에 상장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쿠팡은 자체 물류와 배송 인프라를 구축해서 속도와 품질을 통제하는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에 장기간의 적자를 감수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미국 자본시장은 1997년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을 우선하겠다”라고 주주서한에 명시한 이래로, 이러한 적자 전략에 익숙해져 있었다.


둘째, 당시 미국에는 이미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어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영권이 보호받았다. 이것은 모든 스타트업에게 바람직한 일이지만, 특히 쿠팡에게는 적자를 동반하는 장기 전략을 단기 실적 압박으로부터 분리하는 필수적인 장치였을 것이다. 한국도 2023년에 비상장 스타트업에 한해서 차등의결권이 도입됐는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은 스타트업이 자신의 전략을 허용하는 벤처캐피털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쿠팡이라는 기업의 연혁 자체를 ‘악의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이라고 보기에는 분명히 뭔가 어색하다. 그렇다면 지금 쿠팡의 무책임한 태도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스타트업과 빅테크의 차이를 겉으로만 보면, 단지 같은 조직이 규모만 커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을 목표로 하던 스타트업이 유지를 목표로 하는 빅테크가 되는 것은 조직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 수가 적은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개별 사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이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때 스타트업이 사용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사용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아직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 있다. 하지만 수천만 단위의 사용자를 가지는 빅테크는 사용자를 단지 통계로만 바라본다. 그리고 빅테크가 사용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시스템의 모습만이 남게 된다.


조직의 규모가 작고 체계가 단순한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책임이 분산되지 않으며, 결과 또한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이러한 구조는 사과나 개선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빠르게 이끌어낸다. 반면에 규모가 크고 복잡한 체계를 가진 빅테크는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만 한다는 압력이 약하다. 이러한 구조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해결’이 아닌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로 재정의하며, 영향 범위 통제와 파급력 차단 같은 관리 기법을 이끌어낸다.


쿠팡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미국 정치권에 로비를 하고, 미국 내 투자자들을 움직이며, 국제분쟁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 국적 기업이라는 사실이 쿠팡의 무책임한 태도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무책임을 선택하게 만든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강경한 태도를 취하려면 ‘그렇게 해도 시장을 잃지 않는다’는 확신이 먼저 필요하다.


쿠팡의 확신은 막대한 와우멤버십 회원수로 인한 락인(Lock-in) 효과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히 ‘혜택이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떠나는 순간 사용자가 동시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여러 층으로 겹치는 구조에서 나온다. 사용자는 구독을 해지하면 지출이 늘어나고, 시간을 더 써야 하며, 실패 가능성을 더 감수해야 하고, 이미 익숙해진 생활 리듬까지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이 부정적인 여론을 즉각적인 위협이 아닌 감당할 만한 변수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 순간 기업의 대응 목표는 신뢰 회복이 아니라 손실 최소화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선택되는 전략은 기업의 국적과 무관하게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책임 범위를 최소화하고 시간을 벌며, 절차 속으로 사건을 밀어 넣고, 보상조차 플랫폼 내부에서 회수 가능한 형태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핵심은 ‘미국기업이라서 버텼다’가 아니다. 버티는 전략이 가능한 구조였고, 미국 국적은 이를 실행하는 세부적인 수단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쿠팡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은 미국 국적이라는 방패가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책임 회피를 선택하게 만드는 동기는 언제나 그대로일 것이다. 본질을 파악하려면 수단이 아닌 동기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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