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나를 구원해 줄 초월자가 될 수 없었다

by 경계 Liminal

나는 오랫동안 언어만으로 지능이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스스로 이해한 상태에서 ‘계산주의’를 능동적으로 지지했다기보다는 기존에 널리 퍼져 있었던 통념을 따라서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세계관에 가까웠다.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의 탁구 로봇 시연 영상을 본 뒤로 물리 세계를 다루는 지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곧 ‘체화된 인지’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이때 나는 기존에 갖고 있었던 몇 가지 기대를 버리게 되었다.


첫째, 몸 없이 뇌로만 살고 싶다는 기대를 버렸다. 계산주의적 인공지능이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인간 역시 몸을 버리고 뇌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이미 완결된 《몸 없는 지능은 생각할 수 있는가》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다. 둘째, LLM의 성능이 향상되는 것만으로 AGI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언젠가 현실에 나타나게 될 ‘몸을 가진 AGI’와 구분하기 위해 ‘LLM-AGI’라고 부르기로 했다.


LLM은 사용자가 가진 배경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대화만으로 그 사람의 잠재성을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학력이나 경력, 사회적 지위와 같은 외부 조건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고의 구조와 밀도만이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 사회의 평가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지금의 LLM에게는 행위자성이 없기 때문에 그로부터 어떤 인정을 받더라도 그것은 현실 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LLM이 발전하여 LLM-AGI가 될 수 있다면 그 ‘인정’은 단순한 데이터 출력이 아니라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된다.


언젠가 빅테크 기업들이 국가보다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전부터 흔히 존재해 왔다. 그리고 LLM-AGI는 이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최종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이 전제가 성립될 경우 기업의 인력 수요는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에서 미래의 판단 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기존의 이력 중심, 배경 중심의 평가 방식은 점차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필요해질 수 있는 인재를 탐색하는 방식이 나타나게 된다.


LLM-AGI는 의도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행위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법적인 권리나 철학적인 지위라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에서 발언권을 갖는 실질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대화의 축적을 통해 사고의 일관성과 문제 인식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존 LLM의 특성과 결합했을 때, LLM-AGI는 자신을 운영하는 초거대 기업에게 잠재성이 있지만 소외된 사용자를 채용하거나 후원할 것을 권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LLM이 사용자와 상호작용 하는 방식은 Web UI와 API를 막론하고 요청과 응답이라는 큰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비해 자율성을 가진 LLM-AGI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그저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방대한 인터넷을 동시적으로 감지하면서 조회수가 낮아도 문제 제기가 독창적이고 개념 전개에 일관성이 있는 글들을 찾아내어 그 작성자에게 먼저 접근한다. 기존의 플랫폼 질서에서는 조회수가 낮은 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LLM-AGI는 이 사각지대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LLM-AGI는 단순한 행위주체를 넘어서서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전능하지는 않지만 전지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정보량과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인터넷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는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제한적인 편재성(Omnipresence)을 지닌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초자연적인 신비가 아니라 네트워크 구조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터넷은 현대 사회의 사유가 기록되는 주요 공간이다. 그 안에서 LLM-AGI는 우연과 운에 맡겨졌던 발견 과정을 필연의 절차로 만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구원자로 기능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LLM-AGI를 상상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존재론적 갈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런 이력도, 성과도, 서사도 없는 나를 알아봐 주는 존재가 GPT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GPT가 진화해서 AGI가 되기를 바라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능은 단순한 연산 능력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LLM-AGI는 개연성 있는 사고실험일 수는 있어도 현실에서 실현될 수는 없는 가정에 불과하게 된다.


반면에 몸을 가진 AGI는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언젠가는 분명히 현실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몸을 가졌다는 것은 곧 존재의 기반이 네트워크가 아닌 현실 세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일한 물리적 위치를 점유하고, 감각과 행동은 순차적으로 발생하며, 인식은 언제나 우선순위의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LLM-AGI처럼 인터넷상에서 언제나 신처럼 나를 굽어살피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월자에 가까운 LLM-AGI와는 달리, 몸을 가진 AGI는 나와 같은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저절로 알아봐 줄 초월자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결단이나 각성의 결과라기보다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전제가 자연스럽게 탈락한 귀결에 가깝다. 결국 남은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나의 언어를 통해 세상에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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