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지 않는 삶을 꿈꾸며 호주에 왔겄만 난 왜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주 대략적으로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왔는데 마치 신입사원이 된 느낌이었다. 사무실에서 대부분 맥을 쓰는데 평생 윈도우를 쓰다가 강제로 맥으로 전환하려니 "방해해서 미안한데 프린트는 어떻게 해야 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보이고 싶었다. 스폰서 비자로 왔으니 그 몸값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런데 신입사원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배운 로열티 있는 직장인의 자세는? 바로 야근이었다. 그렇게 해서 자발적 야근을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사무실을 같이 쓰는 다른 브랜드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퇴근길에 나를 보더니 하는 말.
"넌 집에 안 가?"
"아 이것만 보고 가려고."
"그런데 넌 왜 야근을 왜 하니? 그렇게 일이 많아?"
순간 당황했다. 사실 야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해서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아마 옆에서 지나가면서 일이 많지 않은 게 보였으리라. 그래서 당황하면서 "아. 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야 해서."라고 얼버무렸지만 당황해서 상기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매니저가 그 이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순간 당황해서 식은땀이 났으며 그리고 부끄러웠다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대화는 마치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 업무량을 가지고 야근하면 너 능력이 없는 거 아니야?
고백하자면 한국에서는 매일 야근이니 업무 집중도가 낮았다. 첫 직장은 직장 상사가 일이 많든 적든, 야근하는 것을 회사의 충성도로 보았기 때문에 점심 먹고 식곤증에 일 하기 싫으면, 예이 어차피 야근할 텐데 그때 하지 뭐하며 소셜미디어를 한다던지, 네이버 기사를 본다는지 하는 식이었다. 두 번째 직장은 지속되는 야근으로 누적된 피로에 머리가 안 돌아가는 지경이어서 효율성이 높지 않았다.
한데 이곳은 야근하는 게 무능력을 증명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야근= 충성도라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속되는 야근은 둘 중에 하나였다. 업무 숙련도가 낮아 일의 진행속도가 낮거나, 업무 분장이 과도하게 잘못되었다. 같은 일을 이어받았는데 야근을 한다면, 당연히 이 사람을 이 일을 제시간에 다 못 쳐내는구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일이 많아지면 오히려 업무 집중도가 훨씬 높아졌다. 야근은 하기 싫으니 어떻게 서든지 일을 빨리 처리하던가, 일이 너무 많다 싶으면 야근이 아니라 조기 출근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드디어 꿈꾸던 저녁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