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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Jul 28. 2021

너의 권리야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급하게 내려 화장실에 가 토했다. 이상하게 내 몸 같지 않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간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장염입니다. 스트레스성인 거 같으니까 스트레스받지 말고 푹 쉬세요."


저기요.... 그걸 누가 몰라서 못합니까? 의사에게 도대체 스트레스 안 받는 거.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네라고 답하고 나왔다. 약을 입에 털어놓고 돌아와서는 다시 일했다.



그날따라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출근을 했다. 한두 시간 일했을까? 도저히 일 할 몸 상태가 아니라 집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 어떻게 말하지?' 구글에 병가 내는 방법, 상사에게 병가 통보 방법을 검색해봤다. 머릿속으로 할 말을 그려 보고, 보스 방문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굉장히 미안하게 공손하게 이야기했다.


미안한데 나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일을 못할 것 같아.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병가를 쓰는 건 너의 권리야.  집에 가서 푹 쉬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내 권리였지.......'


권리를 권리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과 그렇지 못했던 환경이 오버랩됐다. 실제로 병가를 마음 편히 쓸 수 있었던 날이 사회생활 중 몇 번이나 되었던가. 다들 내가 이 정도로 아팠는데도 일했다는 훈장은 몇 개 정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전 동료는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은 일하다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몸 보다 일이 우선이 되는 게 당연한 직장인의 자세라고 주입받았고 그것을 그냥 직장인의 숙명이라 여겼다.


법대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하면 답을 못하지만 기억에 남는 몇 문장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 는 예링의 말이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대부분의 많은 경우는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있음을 알지만 주위의 압력에 의해서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상사의 압박에, 회사의 분위기 때문에, 나 혼자 튀기 싫어서, 나중에 불이익이 올까 봐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 아니라 어쩌면 안 하겠다고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과 호주의 큰 차이 중 하는 고용주와 직원 모두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리를 주장할 때 당연하게 받아주는 것. 만일 고용주가 잘못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주는 것. 흔히 우리가 말하고, 꿈꾸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좀 더 가까이 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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