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4 시민언론 민들레 기고 칼럼
오전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비몽사몽한 채로 출근 준비를 한다. 지하철역으로 가 열차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한다. 아침밥은 없다. 대신 회사 앞 저가형 카페에 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잠에서 깨기 위해 아아 한 모금 마시고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 12시, 좀비처럼 일어나 식당으로 간다. 엎드려 낮잠이라도 자면 좋겠지만, 살기 위해선 무언가 입에 넣어야 한다. 대충 점심을 때우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낮잠 잘 시간 따위 없다. 탕비실로 가 여러 샷을 넣은 커피를 입에 털어넣는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지만 밀린 업무는 한가득이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눈치를 보다 모두 일어날 때쯤 조용히 일어나 퇴근한다. 아침에 탔던 그 열차를 탄다.
오후 7시 반, 집에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다. 배달음식에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한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 몇 개를 보니 어느 새 12시가 넘었다. 늘어난 살덩어리를 보며 ’운동하겠노라‘ 다짐했지만, 헬스는 언감생심이다. 출퇴근이 곧 운동이라 합리화하며 잠에 든다. 그렇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청년 직장인이 유일하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6시간도 안되는 취침 시간뿐이다.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MZ 청년 세대가 겪는 현실이다.
필자 또한 청년 노동자로, 이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운동과 자기계발은 커녕 기본적인 휴식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고 한다. 지금도 쉬지 못하는데, 주 69시간이 되면 쉴 수 있을까?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개편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대신, 초과 근무량만큼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는 노동자가 원해도 일을 더 할 수 없고, 사업주 또한 몰리는 일감을 해결할 수 없어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내용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들은 청년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콧방귀를 뀐다. 주어진 연차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노동자가 ‘몰아서 휴가’라니. 대체 현실을 알고 있느냐며 분노한다.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 노동자의 연차 소진율은 평균 58.7%이다. 2019년 75.3%에서 2020년 63.3%, 2021년 58.7%로 급감한 것이다.
특히 청년 노동자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기업에 소속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휴가 사용이 절대 자유롭지 않다. 함부로 휴가를 사용하면 “눈치없는 MZ"라는 비아냥과 함께 사용자의 눈 밖에 난다. 실제로 동일 조사에서 나타난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 39.9%는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이었다.
그 결과, 2021년 대한민국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OECD 평균인 1,617시간을 훨씬 웃도는 1,928시간이다. OECD 회원국 중 5위다.
주 52시간이 법제화된 현재에도 초과노동과 공짜야근에 시달리고, 그나마 법적으로 주어진 연차조차도 쓰지 못하는데, 더 일한 만큼 오래 쉬자는 정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 믿는 청년 노동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정부는 근로시간 조정은 노사합의를 통해서만 적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 노동자 비율은 고작 14.8%에 불과하다. OECD 평균 32.1%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이며,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이다. 그마저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 해체에 앞장서고 있어 조직률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장예찬 "민노총, 국민 세금 1500억 타먹고 모르쇠...해체가 답이다" - 펜앤드마이크, 2023.02.19)
노조도 없고, 단체협약 적용조차 못받는 사업장의 노동자는 대체 어떻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오래 하는 휴식’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결국 ‘주 69시간 근무’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청년의 분노는 “청년의 좌익화”로 둔갑되어 뭉개질 것이다.
청년들은 “누가 지금 현실을 오해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배부르고 나약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는 절박한 절규다. 그러나, 그런 청년들에게 정부는 “요즘 젊은이들은 일할 때 확실히 일하고 쉴 때 확실히 쉰다” (한덕수 국무총리), 여당은 “2030 청년층의 경우에도 다들 좋아한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이라며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청년팔이, 진절머리 난다. 우리 청년 세대는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저 숨 한 번이라도 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죄가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청년의 숨통을 막으며 “청년을 위한 일”이라 주장하는 윤석열 정부는 ’청년 살인 정부‘가 틀림 없다. 오늘도 청년 노동자는 지하철역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