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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웅 Oct 05. 2018

내가 사라질까, 우리 마을이 사라질까?

사랑하는 우리 동네 구일산을 기억하며

20년동안 일산동에 살았다. 일산동은 일산역 뒤 옛동네와 일산역 앞 신도시로 구분되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가족은 신도시에 살다가 지금의 옛동네로 이사왔다고 한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였으니,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일산은 일산역 뒤 옛동네 뿐이다.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는 환갑이 다가왔고, 나의 가방을 들어주셨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어느새 20살이 되었다. 어찌보면 부모님의 찬란했던 젊음을 죄책감없이 먹으며 일산역 뒤 옛동네와 함께 자라왔다. 똥냄새가 나던 탄현역도, 100년이 넘었다던 일산역도 이제는 과거의 건물은 허물어지거나 전시관이 되었고, 경의선 전철이 들어서며 그 건물들은 유리궁전이 되어버렸지만, 이 동네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아직도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무책임하게 먹어가며 자라나고 있다



이 동네의 재개발은 내가 어릴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었다. 꼬맹이였던 나는 회색 긴바지를 입었던 형누나들이 담배를 피던, 곳곳에 깨진 유리가 나뒹굴던 판자촌을 없애길 바랐다. 그 안에 사람이 사는지, 그 안에 어떤 인생이 담겨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 바람 덕이었는진 몰라도, 제작년부터 많은 가게에 이주완료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가게들 많지만, 몇 십년 전부터 이 곳에 자리를 잡아온 많은 이들은 어느 새 간판을 떼고, 유리창에 붙은 종이들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이주완료 딱지만이 붙었다.


새마을호가 다니던 일산역에 공사가 시작됐다. 옛날의 일산역은 어느 새 유리궁전으로 재탄생했고, 똥내나던 탄현역은 유리궁전이 된 것도 모자라 새로 지어진 주상복합 아파트와 연결이 되었다. 일산역 옆 언덕길에 있던 교회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교회가 서있던 언덕길은 아파트 단지를 잇는 아스팔트 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다. 장날이면 어디선가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거칠었지만 치열했던 많은 이들의 삶이 눈 앞에 생생하다.


재개발이 시작되고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소식이 널리 퍼진 이후 많은 가게들이 보상금을 받고 이주했다. 끝까지 버틴 이들은 용역에 의해 쓰러졌다. 그나마 주변에 있던 일용직 사무소 덕에 단골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 그것만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으리라. 근데.. 이제 어디서 자전거를 고치고, 어디서 떡볶이를 먹고, 어디서 순댓국을 먹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남아있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떡볶이는 이제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초등학생 때, 서울로 이사할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인천으로 이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 동네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 만큼 이 동네에 일체감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모르겠다. 대학에 따라 자취를 할 수 있을거고, 부모님과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걸 생각하기엔 아직 이 마을을 떠난다는게 두렵다.


내가 아니라, 이 마을이 먼저 사라질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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