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그칠 거라면...
요즘 글이 좀 뜸했어. 시간이 안 났거든. 그것 말곤 붙일 말이 궁색하네. 남들보다 조금 긴 근무시간에, 온종일 발품을 팔아. 체력이 의욕을 깎어먹지. 창을 띄웠다가 닫기만 며칠 반복했어. 그래. 꼭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 사실이 마음을 한층 편하게 했고 말이야. 지금 시작한 이 글도 끝맺을 수 있을까. 쓸 말이 많았는데 소실될 시간도 충분했어. 기억을 더듬다 보면 아마 뭐라도 쓰겠지. 정신이 좀 없다.
주변에서 걱정했어. 회사는 잘 다니냐고. 걱정 반 농담 반이지. 알아. 내 생각과 달리 남들은 보이는 모습으로 타인을 해석하잖아. 자연스러운 궁금증이야. 나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단점들에 금방 질리지 않을까 걱정했어. 어떤 이유에선지 장점보다 단점을 주의 깊게 보는 버릇이 생겼었나 봐. 단지 그 이유들이 직장을 옮긴 이유는 아니지만 그것도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해. 어쩌면 인과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야. 회사는 아직 무탈해. 조금 좌충우돌했지만 잠잠히 다녀. 이쯤 되니 주변에서 조언 아닌 조언을 많이 하더라고. 대체로 선배들이지. "눈 가리고, 귀 닫고, 입 막아라. 적어도 2년은 버텨라"거나 "몇 년을 돌아서 온 거냐. 존나게 버티는 거야"라거나 근속을 권하는 그런 이야기. 알아. 누구에게나 싫은 점이 있고 직장인 대부분은 그걸 감내하며 돈벌이에 나서겠지. 만족할만한 직장 또는 직업을 찾는 일은 특별대우를 바라는 심정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생각해봤어. 부조리나 비인간적, 비합리적 요소의 배제. 사회에 만연한 원소 같은 그것들을 배척한 채 이성만으로 지속 가능한 생활을 해보겠단 발버둥이었던 셈이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보여. '일하는 데만 기력을 쏟고 싶다' 이 생각이 절실할 때가 있어. 그런 환경이지만 나름 적응하는 중이야. 한 달 조금 더 됐지. 1주일 지나면 개월 수론 3개월째. 내 길에 옳고 그른 걸 떠나 해선 안 될 일이 아니라면 일단 가기로 했어. 여로란 게 어쨌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다른 풍경이 보이는 법이잖아? 직장인의 마음가짐이야.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선배 말처럼 돌고 돌아 조금 열악한 환경에 다시 서게 됐지만 예상 못한 부분은 아니니까 괜찮아.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결혼을 하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에 비춰보면 나는 꽤 늦은 편이거든. 내 일에 정성을 들이자는 생각은 거기서 비롯됐어. 최선을 다하자거나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자는 다짐과는 조금 달라. 말하자면 성의 있게 하자는 거지. 취재 현장에 가면 열심히 해. 뛰어다니거나 미어캣처럼 주변을 살피지. 누군가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생각할지 몰라. 내가 그렇게 하는 건 남들보다 나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과정이라서 필요한 행동인 것 같아. 돈보다 일의 의미를 택한 결정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지. 그래서인지 땀을 많이 흘려. 겨울이라고 다를 건 없어. 이따금 땀 닦는다고 바쁠 때도 있거든. 선배들이 보면 웃어. 여러 가지 이유로 웃겠지.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3년 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도 그랬거든. 땀을 뻘뻘 흘려서 타사 선배가 손수건을 준 적도 있어. 미련한 노력의 결실은 땀과 냄새로 나타나. 한 몇 년 묵히면 메주 같은 효용이라도 생기려나.
일을 하면서 예전엔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껴. 대표적인 게 이런 거야. 기자란 참 많은 특혜를 누린다.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면 특별한 건 아냐. 누가 부여했는지 모를 대표성을 가지고 보도를 업으로 하지. 그래서 모두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리는 대신 소식을 전하는 거야. 그럼에도 가끔 묘한 기분이 들어. 그냥, 이질감 같은 걸까. 총리나 여야 대표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락날락 해. 언론시사회도 다녀왔어. 영화가 끝나고 배우과 감독이 기자들과 질의 시간을 가졌어.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연예 일정을 안 다니던 내가 보기엔 좀 생소한 장면이었어. 국회도 그래. 다른 일을 했다면 생경했을 그곳에 수시로 드나들어. 국감 같은 데도 돌아다니고. 기자란 이유로 허용되는 폭이 의외로 넓다고. 물론 다른 일을 하거나 어떤 이유로 모든 곳을 갈 시간이 없는 대중에게 보도한다는 명목이 있지만 결과가 늘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만은 않거든.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 결과에 관대한 직종 같다가도 자책하게 될 때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너무 스스로를 옥죄나 싶기도 하고. 대표적으로 위에 있는 현장에서 저 장면을 놓쳤거든. 저 사안의 본질에 비춰볼 때 장면 놓친 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장면 보도를 업으로 하는 내겐 꽤나 큰 가치를 지닌 거라서 하루 종일 자신을 타박했다고. 뭐 그런 거지. 허용되는 활동 범주만큼, 권한만큼 계속해서 담금질하지 않으면 누릴 것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내가 자책하는 건 소심한 성격 탓이지만서도.
하루를 이렇게 쓰고 나면 집에선 그냥 자. 샤워하고 저녁을 먹으면 얼추 9시쯤 되거든. 잠시 내 시간을 가지다가 잠들어. 기대거나 누우면 머리가 닿기 무섭단 말이지. 그래서 집에선 대부분 앉아서 일을 해. 책은 펴면 자니까 한동안 책도 안 봤어. 글도 못 쓴 이유야. 붙잡고 앉았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 그 시간에 사진 편집을 하거나 다른 일을 했어. 이대로 어영부영 브런치를 접는 건가 싶었어. 그러면 어때? 란 생각까지 갔을 땐 정말 글쓰기를 멈출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 따지고 보면 생각보단 걱정에 가까웠어. 사진기자를 하면서 늘 내 정체성을 묻는 질문들을 받아왔단 말이야. 너는 취재기자냐 사진기자냐, 혹은 글쟁이냐 사진쟁이냐 등. 돌이켜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 질문 앞에 자백이라도 하듯 단호한 대답을 내어놔야 하나 의문이거든.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이 포지션은 쉬운 공격 소재가 될 거야. 그래도 나는 이것들을 양손에 쥐고 싶어. 실제로 그렇게 해내는 이들도 보고 있어. 대단하지. 누구처럼 되고 싶단 건 아닌데, 내 의지를 표현할 수단이 다양했으면 좋겠어. 그런 재능을 키우는 게 독자나 관객 입장에서도 득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결론은 책 좀 읽자, 그거지. 글 안 써져:(
아참. 오늘은 쥐꿈을 꿨어. 잠시 졸았는데 꿈을 꿨거든. 집에서 쥐가 나왔는데 방안을 가로질러 스윽 지나갔어. 나는 잡으려고 일어서거나 쫓지도 않고 그냥 '쥐인가?' 싶어서 다시 쳐다봤던 것 같아. 작은데 빠른 쥐였어. 해몽을 찾아봤더니 쥐를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거나 쥐가 그냥 지나간 그런 내용은 없네? 우환이다, 복이다 말은 많은데 갈래가 많아서 해석을 포기했어. 근데 참 별일이네. 꿈이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쥐가 나온 이유를 모르겠어. 근 몇 년간 쥐를 떠올린 적이 있던가.
스타벅스 왔는데 KT건물에 화재 나서 인터넷이 안 된다고. 올라가야겠다:P
P.S.'하도해녀합창단'이라고 해녀들이 낸 앨범이 있어. 노동요 같기도 하고 아마추어 합창단의 노래 같기도 한데 제법 울림이 있더라. 멜론으로 계속 돌려듣는 중이야. 슬픈 가사가 아닌데 듣고 나면 조금 슬퍼지네. 한 번 찾아봐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