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가즈아
공기가 차다. 입김이 새어 나온다. 연희동 출근길은 가파른 내리막에 발을 딛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 집은 언덕 중턱에 자리한 탓이다. 주말에 내린 눈의 영향인지 땅이 젖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언 땅에서 넘어지면 답도 없다. 조금만 내려가면 골목으로 대로가 보인다. 차들도 출근길 박차를 가한다. 시야를 스치는 차들의 속도로 출근길 교통대란을 가늠할 수 있다. 오늘은 조금 서두른 탓인지 큰 탈 없이 탔다. 월요일과 비 오는 날은 평소보다 20분 일찍 나가야 한다. 연희동은 그 나름의 운치만큼 불편함을 간직한 곳이다. 지난 1년 6개월간 출근하며 느낀 단상이다.
점심을 해결한다고 카페에 왔다. 며칠간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더니 지출 폭이 컸다. 카드에 구멍 난 것처럼 돈을 쓰다 보니 급여로 충당이 안 될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혔다. 직장 출근 초기처럼 다시 카페에서 커피를 식사 대용으로 먹는다. 그때는 단지 끼니 챙기기 귀찮아했던 짓이 이제는 휴식을 동반한 티타임이 돼버렸다. 붐비는 식당보다 카페 구석탱이가 심적으로 훨씬 편하다. 공복감이 더는 싫지 않게 된 요즘 하루 중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다만 마음의 양식을 얻는 대가로 지방을 내어주게 됐는지, 자꾸만 살이 빠지는 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의도치 않게 살이 찌거나 빠지면 필연적으로 체형이 망가진다. 지금도 썩...
나와 눈을 맞추는 꼬마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또는 어린이집 다닐 나이쯤 돼 보인다. 대각선 앞쪽에 앉아 한 번씩 이쪽을 쳐다보는 아이는 자꾸만 시선을 뺏는다. 아이는 작고 귀여운 인상을 준다. 두상도 동글동글 예쁘다. 그보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한 얼굴이 어쩐지 어색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모발도 짧게 자른 까까머리다. 자꾸만 시선이 가는 이유, 어디 아픈가. 아이는 어머님들 세 분도 함께 앉아 시종일관 시선을 여기저기 돌린다. 이 시간에 의무적으로 가는 곳 없이 어머니와 외출. 마스크와 짧은 머리, 그리고 털모자. 슬픈 상상을 자극하는 요소가 불현듯 머릿속에 차오른다. 가뜩이나 월요일 아침이라 슬픈데 '너까지 그러진 말라'는 눈빛을 쏘아본다.
스타벅스 프리퀀시 다 모았다. 라테류 이벤트 기간이라 이벤트 음료 주문 없이도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요는 어떤 다이어리로 교환하느냐다. 다이어리 종류가 하나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엔 최소 2개 이상인 듯하다. 저마다 크기도 다르다. 고객의 선택을 존중하는 기업의 배려에 나 같은 결정 장애자는 눈이 훽훽 돈다. 무엇을 골라야 밥 먹듯이 한 스벅행이 덜 우둔해 보일까. 술도 담배도 안 하는 나는 이런 짓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작지만 확실한 기쁨. 소확뿜.
프리퀀시 때문에 안 하던 짓을 하는 와중에 선택을 요하는 순간이 왔다. 2년 하고도 1년을 더 쓴 선택약정 기간이 12월 7일부로 끝난다. 약정을 연장하라는 안내 문자를 받고 통신사를 갈아탈까 한다. 소심한 나는 결정에 앞서 덕질하듯 검색을 해보는데 알뜰 통신사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선 지금 쓰는 무제한 요금제는 약정할인과 결합할인 등을 받아 47,000원에 이른다. 반면 거의 같은 조건의 헬로모바일 무제한 요금제는 무약정에 33,800이다. 단순 셈해도 월 13,000원 절약된다. 2년이면 무려 312,000원을 아낀다. 다음 폰으로 건너갈 종잣돈 일부가 모이는 격이다. 게다가 지금 쓰는 삼성카드에서 헬모 할인용 현대카드로 갈아타면 17,000원이 추가로 할인된다. 이 역시 2년이면 408,000원이다. 무약정 무제한을 16,000원쯤에 쓰다가 2년 뒤 아낀 720,000원으로 새 폰을 사면 된다. 안녕 SK텔레꼼.
여담이지만 최근 해외 직구로 노키아7플러스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같은 폰 쓰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본 것 같다. 예쁜데, 이 폰.
여담(2)지만 워낙 드문 모델이라 국내에서 파는 폰 액세서리도 없어, 알리에서 주문했더니 언제 올지 감도 안 온다. 상품이 근 일주일째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다. 알리는 기다리는 맛이라더니.
별개의 이야기. 언론에서 청소년 범죄를 조명하며 사회적으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한때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취재할까 하여 교도관으로 있는 지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끄적여본다. 나는 교도소의 기능을 신뢰하지 않았다. 교도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당시 지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면회 여부를 문의하며 이 같은 의문도 함께 던졌다. '사람은 변하는가.'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지인은 단답으로 내 의문을 끊었다. "사람 안 변한다." '장기 복역 중인 사람들의 교화 가능성도 있지 않나.' "교도소는 그들을 격리하는 곳이지 교화를 위한 곳은 아닌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 재범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꽤 된다고. 나는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지인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의 평소 모습을 물었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 기억을 긁었다.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는 내용. 지인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글 쓰고 그림 그린다"고. 평소 얌전히 생활하며 자기 시간을 저렇게 쓴다는데, 놀랍기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 대답에서 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질감을 느꼈다. 만인이 보장받아야 할 인권과 법이 지켜주지 못한 피해자의 삶 사이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주는 배덕감. 지키는 이들의 피해가 더 큰 법의 한계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듯도 하고.
다시 돌아와, 엄마에게 이직한 사실을 들켰다. 며칠 전 아빠가 내 바이라인을 검색해보셨나 보다. 그 사실을 묻는 연락이 와 답했던 게 엄마 귀에도 들어갔다. 엄마는 '왜 옮겼냐'고 전화로 물었다. '하고 싶어서'라고 선뜻 답하지 못했다. 답을 안 하자 재차 물었다. 급여가 높냐거나 무슨 이유가 있었냐는 등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기세로 물어왔다. 나는 "그냥 옮겼다"고 방어하다가 문득 상황이 언짢아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자식의 이직 소식을 (재차) 들은 부모의 마음이란 걱정과 의문이 뒤섞인 상태일 터다. 그런 전화에 감정을 뱉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 나은 환경이라 이직했어요'라고 답할 수 없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정적이거나 남들이 원하는 직장에 몸 담은 적이 있다. 그곳을 박차고 나온 게 부모님의 걱정을 가중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과거를 변명하거나 후회 담은 소식을 전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언제든 해드리고 싶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된 모습을 보여드리면 좋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전화를 끊기 전 "앉아서 하는 좀 편한 일을 안 하고..."라며 속내를 비치셨다. 부모의 마음은 종종 의도와 무관하게 속을 후벼 판다. 아마 엄마의 속도 그렇겠지만.
이동할 시간이다. 식사대용 머핀도 먹고 글도 썼다. 한 주의 출발이 좋다. 이번 주도 잘 지내보자. 모두에게 알맞은 계절의 시발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