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있는 용기를.

그에게 배울 수 있기를...

by OIM

악재는 겹쳐온다. 사람이 힘들어지는 이유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불행이 주변을 감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이런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어제다. 이것 봐. 악재는 겹치잖아.


납득가지 않는 일이 생겼다. 회사 일이다. 한 가지가 아니다. 긍정의 부재가 찾아오는 길이 그렇듯 상황은 악화일로다. 어제는 기폭제에 불이 붙었다. '왜 이런 식으로?'라던 생각이 반복되다가 직방으로 얻어맞았다. 이해 안 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내가 끼어버렸다. 반박이나 변론 같은 게 소용없는, 일방적 하달에서 비롯된 꽉 막힌 느낌이랄까.


종교에 육박할 정도로 자신을 세뇌하는 요즘,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 풀릴 뻔했다. 이를 테면 강제 긍정, 강제 낙관, 강제 희망. 이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단어 사이의 틈도 허락지 않을 만큼 퇴사 없이 버티기에 애썼다. 좋게 보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허나 사회비판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서 나오는 흔한 캐릭터처럼 적당히 살거나, 마찰 없이 사는 것만이 롱런을 위한 길잡이였다. 그저 가슴이나 쥐어뜯으며.


막상 어제 일은 맞닥뜨리기 전보다 나쁘지 않았다. 겪고 나니 추억, 같은 철 지난 도색은 아니다. 일을 받았을 때의 거부감처럼 일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잠시 성급한 판단은 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낙관과 비관은 미세한 톤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늘 알고 있던 사실에 무뎌졌다가 자극을 받을 때마다 떠올린다. 나는 바본가. 이렇게 자책의 길로 들어선다. 이런 식으로 사고가 귀결되는 걸 보면 참 사회 순응적인 사람 아닌가 싶고.


오늘은 어제 느꼈던 비관과, 의지로 끌어올린 낙관 사이 어디쯤에서 발버둥 쳤으나 좀처럼 불이 붙지 않는다. 어쩌면 어제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스트레스는 풀어주는 게 중요하단 말을 들었다. 풀 사이 없이 쌓이는 스트레스는 질병에 버금가게 위험하다. 아니, 나쁘다. 질병은 병세로 진단이나 가능하지 스트레스는 쌓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해소 효율도 떨어지는 게, 웬만큼 돈을 써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게 반복되면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돈을 쓰는데 정작 나아지는 점은 없는 공회전이 반복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그 어떤 악성 종양 같은 생각도 휴가 앞에선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이놈 저놈 하다가도 휴가를 다녀오면 어느 정도 부처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도 아, 이번엔 안 되는데 하면서 반쯤 발을 빼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어느덧 주말을 앞뒀다. 그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발 불이고 있기엔 꽤나 단점이 많다. 직장을 선택할 때 흔히 고려하는 요소들의 대부분이 단점 쪽에 치우쳤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한다는 그 점에 지대한 점수를 주고 모든 부하를 벽에 밀어붙여 버티는 중이다. 밖에 나가면 '그건 왜 그래?'라는 이야길 타사 동료들에게 가끔 듣지만 대답할 엄두도 못 내는 점이 진실로 슬프다. 나도 이유를 모르거든.


오늘은 자발적으로 나온 야근 일정이 정말... 예상과 달랐다. 추운데 한 시간 넘게 기다렸건만 직업적으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낮에 올린 사진도 안 나가고...


그래서 여기 올린다:P


미쓰비시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점을 소송 제기 18년 만에 인정받은 할머님(이하 피해자분들)의 이야기.


김성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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