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움틀꾸움틀

인내 주머니가 요동친다

by OIM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가면 1층에 스타벅스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엔제리너스였는데 어느새 바뀌었다. 엔젤이 영업을 이어가던 당시 한창 수습기자 연수를 받으러 센터를 찾았는데, 유달리 카페 이용을 꺼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엔젤 커피는 맛없단 소문이 자자했다. 이후 이곳은 스타벅스가 자리를 접수했고, 최근 들어 나는 이곳에 눌러앉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 스벅을 자주 가는 편이기도 하지만 여기 오면 기자들이 많아 심적으로 마감하기 편안하다. 역시 '프레스' 센터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광화문. NOKIA7 PLUS.


비도 오고, 오전 일정을 공치기도 해서 광화문에 앉았다. 간단한 스케치를 마치고(사실 의욕도 없고..) 마감하려고 카페로 향했다. 그리곤 붙박이가 되어 다음 일정까지 자리를 지킨다. 오늘은 그 정도로 여유를 부린다. 평소 같으면 비도 오니까 '비 오는 날 찍을 수 있는 풍경 하나 더?' 같은 생각에 의욕을 불태웠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진기자를 다시 하는 이상 일할 때만큼은 성의 있게 하자는 다짐이 변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기자'라고 한다면 꽤나 빈정 상하는 일들의 연속선상에서 직격타를 지난주에 맞아버렸기에 마음이 한풀 꺾였다. 선배들은 이럴 때야말로 존버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쉽지 않다. 이성이 이끄는 대로 쉽게 버텨지면 괜히 '존'이 붙었겠나.


나는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엔 후회가 되려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진기자를 다시 시작한 것은 그렇다 쳐도 재도약의 발판이 이곳이었야 했나 하는 덴 의문이 인다. 특히 이곳에 먼저 채용이 되는 바람에 놓친 다른 언론사의 사진기자 자리를 생각하면 지금이 후회를 하기에 적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거쳐온 모든 언론사(규모의 대중소와 무관한) 중 언론의 본연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이란 확신에서 후회는 좀 더 짙어진다. 기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따른 권한 등을 고려할 때 스스로 '기자' 직함을 달아도 좋을지 생각이 흔들린다. 또 기자로 살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희한한 일들을 회사의 특수성을 빌미로 단기간에 모두 겪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입사 지원할 때 먹었던 '사진만 찍을 수 있으면 다 참을 수 있다'는 각오도 푸딩처럼 요동친다. 이를 테면 '사진을 찍게 해 줄 테니 이것도 참고, 저것도 참아보라'는 환경에 처했달까.


지금 나를 지탱하는 건 이번에야말로 어지간하면 참고 말겠다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고다. 한 선배가 그랬다. "너는 엄청난 악수를 둔 거야"라고. 이 회사를 염두하고 한 말이라기 보단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버렸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하필 이전보다 한참 더 이직이나 성장을 염두해야 하는 환경에서 출발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건 내가 공채로 입사했던 '알만한 회사'에서 성장을 꾀하는 것보다 몇 배 더 희박한 확률에 기대는 일이 될 거라는 조언이었다. 그때보다 시간도 2~3년 흘렀으니 선배의 말은 꽤 묵직하게 꽂히는 돌직구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허허" 웃었지만 웃음이 함께 할 타이밍이 아니었단 거. 그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 (슬퍼.)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온 이유도 실은 사진기자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겠단 생각보단 사진으로 기자를 할 수 있단 점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는 좀 더 어린 나이, 꿈과 희망으로만 걸어볼 수 있는 그런 시기라면 그 또한 (선배로서 또는 형으로서) 지지할 수 있는 결정이지만 지금은, 앞으로는 근무환경을 뒷받침하는 회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 말을 듣는 당시엔 '달리 수가 있나'라며 '그저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할 뿐'이라고 자위했다. 근데 내 직업적 정체성(기자)에 대한 도전에 직면한 요즘 억눌렀던 후회가 물밀 듯 밀려오고 있다. '펜 기자를 했으면 지금보다 적은 시간 일하면서 1,000만 원은 더 받을 수도 있었겠다'와 같은, 낙하를 앞둔 단풍의 독백. 뭐 그런 거지.


하여 내가 공채로 입사하기 전 어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했던 생각들이 뇌 주름 사이를 헤집는 중이라 마음의 가닥을 잡을 필요가 생겼다. 애초에 이직을 염두하고 회사를 다닌다든가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잠시 목줄을 저쪽에 맡겨두는 그런 마음가짐이 요긴해졌다는 말. 이곳에서 새 출발 하는 내게 해 준 다른 선배의 말. "ㅇㅇ야 아무리 足 같아도 2년은 버텨야 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2년 버티면 보살처럼 약간 귀가 커진다거나 유비처럼 귓불이 늘어나 부처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끊임없이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어떤 행위가 필요할 듯도 하다. 근데 2년…. 무엇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어쨌든 내 직업적 성취도가 최하위에 머물렀던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는 스벅 개장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 스벅에 입장했고, 퇴근과 동시에 다시 스벅으로 돌아가 공부했다. 신문 읽고, 논술 써보고 하는 공채 준비의 연속. 하루는 회사 화장실 옆 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내가 대학원에서까지 저널리즘 전공하곤 기껏 여기서 원하는 글이나 써주고 있네'라는 회의감에 휩싸여 악에 받친 적이 있는데, 그게 밤낮으로 내가 공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어느 날 자신을 타자화했는데 그게 영 자신이 생각하던 인간상이 아니었던 거지.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다시금 마음을 갉아먹어 지금 발동이 걸릴랑 말랑 하는 중이란 내용을 이렇게 풀어쓴다. 후.


여러 해 비슷한 감정을 반복하면서 단기간에 어떻게 결단 내릴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인내는 쓰디쓰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을 빌미로 시간을 곱씹어야 하는 인내 같은 건 조금 더 쓴 물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다음 일정 때문에 이쯤 줄인다만, 현실에 불만이 생기면 글을 쓰는 내 성격상 한동안 브런치에 말이 많아질 듯한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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