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감정(感情)

가벼운 이야기 쓰려고 했는데 망했네?

by OIM

살짝 여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재 때를 놓쳤더니 여유가 생겼다. 속된 말로 '공친' 셈인데, 그러다 보니 일정이 떴다. 마침 밥 때라 점심을 먹었다. 다음 장소까지 넘어갈까 하다가 잠시 앉았다. 생각해보니 커피를 마신 지가 언제던가. 스타벅스에 앉은 이유다. 오랜만에 두유 라테를 홀짝인다. 날은 풀렸지만 체감 기온은 여전히 낮다. 겨울 중 따스한 편이지 여전히 그 계절 진입로에 있다. 여유와 기온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뜨거운 음료를 마신다. 오늘은 운이 좋다.


강릉 펜션에서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소속돼 있는 학교를 찾았다. 예상대로 출입은 통제됐고 몇몇 취재진이 교문 앞에 자리를 지켰다. 학교는 휴업이고 관계자들은 이곳에 없어 나 같은 사람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스케치만 살짝 하고 자리를 떴다. 그 과정에 취재에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교직원과 주변 상인을 목격했다. 무척이나 짜증이 나있었다. 듣자 하니 앞서 나간 기사들이 잔뜩 화를 돋우었다고.


현장에서 상인에게 전해 들은 사정은 이렇다. 어제 모 취재진이 왔다가 가게 내부를 이용하는 과정에 녹취를 땄단다. 호의를 가지고 공간을 내어주며 전기를 이용하게 해 줬더니 몰래 싱크 따서 기사를 내버렸다고. 아저씨가 "녹취"라고 말하는 걸 보니 기사는 글이 아니고 영상(방송)일 확률이 높은 듯하다. 텍스트로 나갔다면 녹취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기사를 그런 식으로 내면 안된다"고 하는데 뭔가 사실관계에서 틀린 부분이 있나 보다.


이밖에도 떠도는 루머들은 인터넷 여론마저 호도하고 있었다. 내가 확인한 루머는, 소위 '기레기'라고 불리는 기자 직군 종사자들이 학교 근처에서 매우 무례한 방법으로 취재를 하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실상 주의를 요하는 메시지에서 묘사한 기자들의 취재 방법을 보니 현장에서 취재기자들이 취재하는 패턴과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를 테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취재법이라 루머 가능성이 농후하단 이야기다. 지인에게 루머를 전해 들었지만 나는 그만 피식하고 말았다. 종사자들이 믿기엔 다소 허황된 내용.


그럼에도 관련 소식을 기사화하는 과정에 오보가 있었다거나, 그로 인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는 소식을 함께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반복되니 이쪽 직군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고 루머도 떠돌겠지. 반쯤 남은 커피를 입에 대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 가운데 하나가 벌어졌는데 나는 이토록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보내도 되는지 문득 궁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단 결론에 이르렀다. 100인의 비통한 심정이 한 사람의 재앙을 구제할 수 있나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


어떤 면에서 비인간적일 수 있는 자세가 이런 시점에야말로 발휘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나처럼 보도를 하는 사람이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 또는 관련 사건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가슴 한 편에 시린 감정을 간직하면서도 자기 일에 충실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무엇보다 사건을 안타까워하는 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이지만, 앞서 나열한 사람들은 그 이상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히 비극 앞에 너도 나도 애도를 보내자는 좋은 말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각론으로 들어가 사고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게다. 얼핏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이 행동들이 훗날 재난을 막는 금자탑이 될 것이니 말이다.


무슨 거창한 말 하듯 끄적였지만 별 거 없다. 각 분야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아직은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들이나 행정 관료들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 사고 현장에 나타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보다 그와 관련된 고민의 흔적들을 법안이나 세부 정책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매번 현장에 나타나 피해자(의 지인)를 만나고 가는 모습이 실제로 그들에게 얼마큼 위로가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물론 모르쇠 하는 것보단 의미 있겠지만 그 시점에 그것이 적절한 방법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서.


어쨌든 나는 분향소라든가 사고 현장 등 유독 좋지 않은 현장에 가면 상당한 감정을 담아오는 편인데 그 여운이 내가 하는 일을 미워하는 데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한 며칠은 단단히 단속해야 한다. 남들의 상처에 보도를 명분으로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가 하는, 뭐 그런 자괴감이 수반되기에 말이다. 한편으론 사건사고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져놓고 글은 참 쉽게도 쓴다 싶고:( 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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