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전락
평범한 시간을 어떻게 비범하게 꾸밀까 고민하다 일기 쓰는 텀이 길어졌다. 글도 말도 생활도 별다른 수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매번 같은 고민 끝에 떠올린다. 그래서 쓴다.
- 이직 실패기
이직 피로감에 앓았다. 최근 진행했던 이직이 엎어진 탓이다. 순조롭다 했더니 역시나 복병이 나타났는데, 면접 때 얘기한 부분과 근로조건이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는데 혼자 믿었다가 실망했다. 정황은 충분했으나 증거는 없달까. 사정은 이렇다.
신입/경력을 뽑는다는 공고에 경력직으로 지원했으나 신입과 같은 입사 절차를 거쳤다. 논술시험에 실무면접, 임원면접까지. 심지어 경쟁 구도였다. 의아했으나 이를 잠재울 요소가 면접 곳곳에 드러났다. 가령 내 경력(취재/사진기자)에 기대가 크다거나 연봉은 얼마를 희망하냐는 질문 등이다. 또 경력 인정과 관련된 부분을 임원과 이야기해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진의는 행간에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나는 신입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입사 첫날, 아쉽지만 경력을 인정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부서장에게 들었다. 임원들에게 어필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고. '나는 책임자가 아니라 전달자'라는 부서장의 포지션에 살짝 피로했다. 이후 건네받은 급여 내역도 신입의 그것이었다. 문제는 '신입'이 아니라 면접 때 내가 전달한 최소 연봉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는데 이 점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설상가상'의 용례. 수습기간을 들이밀었다. 면접 때 그랬다. "수습기간이 6개월 정도 있을 수 있는데 처우에 차이는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보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선심이라도 쓰듯, 경력이 있으니 수습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였다며 이 기간엔 급여의 80%를 지급한다고 통보했다. 전 직장보다 연봉이 낮아졌다는 소식도 꽤나 빈정 상하는 뉴스인데 3개월 간 전 직장 대비 월급의 80만 원가량이 줄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나에게 전했다.
내 요구조건과 사측이 제공하는 근로조건의 차이를 그들도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적응"이란 말을 써가며 나의 회사 정착을 종용했다. 마치 그들이 제시한 조건에 따르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 양 묘한 분위기를 뿜어댔다. 나는 숱한 회사를 거치며 대다수 사람들이 무색무취하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회사의 태도에 자못 열이 받았다.
수습교육이라며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던 '사수'에겐 이런 말을 들었다. 기사를 쓰라고 해서 썼더니 "어디서 기사 쓰는 걸 배웠나?"라든가 "누가 기사 쓰는 거 가르쳐준 적 있어?"라고 했다. 배열이나 문장, 리드 등을 언급하며 "잘 쓴다"라고. 지면이 나온 뒤 교정교열을 볼 때도 내게 따로 한 번 보라고 시켰다. 그마저 "이 정도면 바로 교정 봐도 되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사진도 찍어오래서 찍었더니 "이렇게 찍으면 된다"라고.
모르겠다. 그 사람들은 애초에 회사로 입사해 '편집국'을 담당해온 거고 나는 기자로 입사해 혼나가며 배웠다. 대학원에서도 숱하게 지적당하며 첨삭을 받았다. 민망할 정도로 빨간 줄 그여가며 글을 고쳤다. 사진으론 한 때나마 밥벌이를 했다. 그러니 이들이 속한 분야의 전문성을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경력을 신입 취급하려다 보니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애석하게도 교정 볼 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기사도 여럿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연봉 인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사실 가능성 없는 협상이 될 걸 알았다. 하지만 거의 뒤통수 맞다시피 하며 순한 양으로 살 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이 와중에 야근 및 주말근무가 포함된 시간 외 근무가 굉장히 빈번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한창 많을 땐 추가 근무를 100시간 가까이했다고. 나는 부서장과 면담했다. 그 결과 회사를 나오게 됐고 다시 구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 후 며칠이 지난 지금은 입사 전 확실히 되묻지 않고 간 내 잘못이라 생각하며 넘기기로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그게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이번 일로 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과연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동일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능력이 곧 노동 과잉으로 돌아오는 조직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호봉제'로 회사 망하게 생겼다"는 친구의 말을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