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장면이 있어요.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손을 덜덜 떨면서 투명한 비닐이나 바스락 거리는 종이에서 가루를 흡입한단 말이죠. 퀭한 눈과 불안한 시선이 그 사람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니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한단 말이에요. 갑자기 이게 왜 생각이 났냐면요. 요즘 제가 그렇거든요. 초콜릿을 사서 포장지를 뜯어놓고 한 조각씩 부숴먹어요. '뽀각-뽀각-' 소리가 나는데요. 초콜릿 포장지 특유의 각기스러움을 살포시 벗겨내고 초콜릿 조각을 꺼내먹어요. 초코크림이 손에 묻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아요. 그저 그 행위에 집중하면요. 한 조각 먹고 나서 오는 심미적 만족이 상당한 거 같아요. ……. 조금 위험한가요?
1.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글쓰기 공간을 빼앗겼어요. 일종의 홍보 업무를 겸하게 되면서 네이버 아이디와 페이스북 아이디를 회사 페이지 관리자로 등록 '당해'버렸거든요. 네이버 블로그에 하던 말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건 그런 이유랍니다. 이사 오면서 스타일의 변화도 조금 주려 했고요. 그곳에서도 글을 보러 와주던 단골손님(?)들이 있었는데 인사도 못 하고 나왔네요. 갑작스레 진행된 일에 저도 어리둥절 했거든요. 어쨌든 그 공간에 대한 정리나 이곳으로의 이사는 요즘 제 생활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관심사라고 할까요.
2. 회사를 여러 번 옮겼지만 시작은 늘 정신없는 것 같아요. 면접이나 상사에 대한 두려움은 차츰 없어졌는데요. 그런 부분이 상명하복이나 수직적인 구조를 강조하는 곳에서 득이 되진 않더라고요. 티를 내진 않지만 회사 특성이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요인이 돼 버리니까 짐을 하나 얹고 시작하는 셈이죠. 새 직장도 다소 그런 부분이 강해요. 제가 맡은 업무 특성상 상사와 부딪힐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래요. '사회생활'이란 걸 지속적으로 지켜보게 된답니다. 어쩌면 포지션상 바로 위 상사가 회사 대표라서 저는 조금 더 논외로 사회 '생활'을 느끼는 걸지도요.
3.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면 또 어떻게든 긍정 회로를 가동할 수 있어요. 사람 일 마음먹기 달렸다는 건 그런 의미겠죠? 그래서 아주 잠시,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이놈의 회사를 접고 다른 곳을 알아볼까 고민했었지만 차츰 사고 회로가 방향을 틀고 있어요. 단점과 장점을 매칭 하는 과정입니다. 제 장점이자 단점이며 지난 직장에서 상사가 제게 해 준 말이기도 한데요. "너는 너무 앞을 내다본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당시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런 것 같습니다' 정도로 수긍하게 됐어요. 사고의 유연성 면에서 발전했지만 딱히 개선할 점이 떠오르지 않는 건 나아가지 못했다는 증거겠죠. 그래도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만.
4. 일단은요. 밥벌이는 저렇게 일단락됐어요. 크고 작은 기회들이 여전히 주변에 상주하지만 손을 뻗어 잡을 의향은 전보다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의지나 기회들이 이직의 원인이 되곤 했는데요. 저도 조금씩 변해가나 봐요. 강북에서 일하고요. 탈언론했습니다. 벌이는 기자 할 때만큼 되고요. 전에 비해 훨씬 여유롭지만 어딘가 업이 갖는 의미는 전만 못하다고 할까요. 애초에 일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는 친구들의 말을 이따금씩 되새기곤 합니다만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5. 생활상은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요. 집과 직장 사이가 조금 가까워졌지만 그만큼 퇴근시간이 늦어졌답니다. 이걸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는 판단이 안 서네요. 집에 가면 졸음이 쏟아져요. 추우니까 불도 올리고요. 방이 따뜻해지면 필연적으로 몸이 기운답니다. 들어올 때부터 붙어있던 소파는 정말로 위험해요. 무릎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으면 어느새 기어서 이불로 가고 있다니까요.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인은 다 그래' 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정말로 직장인은 다 이럴까요?
6. 어딘지 모르게 피로함은 큰 것 같아요. 그게 정신적인 피로인지 체력적인 건지는 모르겠어요.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에서 '몇'에 속하던 과거와 달리 범주를 벗어난 철새의 심정으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 딱 이렇겠네요. 아마 체력보단 정신적 피로가 큰 것 같죠? 예전엔 시간이 남으면 블로그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좋은 저녁이라고 자평하곤 했는데 그저 쉬는 시간으로 남아버린 오늘날은 어딘지 아쉬움이 크게만 다가옵니다. 하루 종일 (반) 강제로 일을 하고도 저녁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스터디나 규율 등으로 자신을 강제하는 일을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밖에요.
7. 스타벅스 카드에 5만 원을 충전해뒀어요. 커피를 그렇게 자주 먹는 편은 아닌데 말이죠. 한 번 할 때마다 5만 원씩 넣게 되는데 씀씀이가 큰 탓인가 봐요. 커피를 커피로 먹지 않고 간식으로 먹는 경향이 생기면서부터 케이크와 함께 먹곤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 번에 7,000~10,000원씩 지출합니다. 충전 단위가 큰 이유는 여기서 비롯되네요. 하지만 연희동에 살면서 커피숍 발굴을 위해 스타벅스에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다짐이 무색하게 카드가 빵빵하네요.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대기 시간을 스벅에서 보내며 '에라…'하고 넣어버렸지 뭐예요. 나갈 때는 큰돈이지만 5만 원어치 커피를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뜩이나 추운 날씨를 조금 따습게 보낼 수 있답니다.
8. 친구 결혼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번에는 하객으로 간 게 아니라 사회 보러 갔어요. 미리 식장에서 대본을 받고, 수정한 대본으로 연습을 했지요. 유치한 멘트나 어색한 문장 등은 이래저래 고쳤어요. 읽어보고 다듬고 읽어보고 다듬고. 그게 유효할 거라 생각했지요. 막상 예식이 시작되니까 아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문장이 좋은 편이고요. 언제든 애드립을 칠 수 있게 대비하는 게 좋았어요. 순서라고 해봤자 식장 관계자와 사회자 정도만 숙지하고 있는 편이니까 본 식 당사자들은 물 흐르듯 행사를 진행해버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생략된 멘트도 많고 애드립도 많았어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목소리가 묻힐 수 있으니 그것도 주의 포인트네요. 친구들 말마따나 초반에 좀 쫄았지만 여러모로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12월에 하나 더 남았다는 게 함정입니다만.
9.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고양이 여러 마리를 봐요. 치즈 뚱냥이부터 턱시도 점박이에 점박이가 낳은 꼬물이들이 서너 마리 등이요. 그밖에 특색 있는 애들이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데요. 교류한 건 위에 말한 저 녀석들 정도입니다. 치즈는 언젠가 앞에 와서 '냥-냥-' 대며 울더라고요. "먹을 거 없는데"라고 했지만 도통 들어먹을 줄 모르는 녀석이더군요. 다리에 와서 8자로 비비적대며 야옹야옹 울던 아이입니다.
턱시도는 좀체 다가오지 않다가 제가 자리에 앉으니까 조심조심 다가오더라고요. 이 녀석 역시 8자로 주변을 맴돌며 부비적 부비적. 손을 줬더니 머리로 박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콱' 하고 물었습니다. 손등에 '빵꾸'가 뽕. 피가 주룩 흘렀어요. "너랑 안 논다 이제"라며 집으로 가는데요. 빌라 입구까지 따라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건물 계단까지 따라온 녀석 뒤로 또 한 녀석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점박이 반려묘가 아닌가 싶어요.
꼬물이들은 얼마 전에 만났어요. 점박이가 잔뜩 경계하던 날이 있었는데 저 멀리 꼬물이들이 '삐약'거리고 있더라고요. 담벼락 뒤로 벽에 붙어 살금살금. 하나, 둘, 셋. 꼬물이도 크기 차이가 있더라고요. 차 한 대 지나갈 너비의 골목길을 마치 대서양 횡단하듯 호다닥 호다닥. 얘네는 멀리서 삐약거리기만 하지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점박이가 오니까 쪼르륵 따라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요즘은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데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지네요. 이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차 본넷에 올라 식빵도 굽고 위에서 장난도 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지만요.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본넷을 좋아하나 봐요.
10. 그저 살아낸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은교에 나온 대사처럼요. 이적요가 그러잖아요. "너희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하루하루가 버텨야 할 과제 같아진다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어쩌면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세월을 견딘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요. 아주 가끔, 마음속으로. 요즘 삶이 부쩍 힘에 부치나 봐요:P
11. 다만 10번에서 밝힌 것처럼 삶이 견뎌야만 하는 무엇이 되어버리면 딱히 지옥이나 내세로 가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 되겠지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요즘입니다만, 직장이나 직업을 떠나 즐거움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어요. 추상적이고 막연하지만 가닥을 잡아가는 일에 의미를 두고요. 이르면 1~2년, 늦으면 3년까지 성과를 내고 싶어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과거와 달리 주체적으로 뭔가를 노려볼만한 때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윤곽이 드러나면 그 과정을 이곳에 기록할까 합니다. 재밌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