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간 업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직보다 전업에 몰두하고 있다. 몸담았던 분야를 떠나는 일이 어느 정도 노력을 요하는지 모르기에 막연히 발버둥 치고 있다. 버둥버둥.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쳤다. 어떤 면에서 과했고, 어떤 면에선 필요한 과정이었다. 대학 진학 필요성이 옅어지는(?) 요즘이지만 그때는 대학원의 의미를 몰랐다.
결국 인지도 있는 회사에 입사했으니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내가 석사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석사 과정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 후다.
보물섬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항해술을 배웠다. 배도 사고 노를 저어 그곳에 도착했지만 그 보물은 내가 찾는 '보물'이 아니었다. 섬을 찾기 위한 시간들이 아스라이 스러졌다.
처음엔 이게 너무 힘들었다. 목적지를 염두하고 걸었는데 도달하니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단 사실이 꽤 힘들었다. '어떡하지'란 생각도 들었다. 실패한 기분, 참담함 그런 거.
한동안 업계를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관련 직종을 찾았던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완전히 바닥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잘못 왔다는 걸 시인하는 것만 같았다. 선을 넘기가 두려웠다.
떠나야지 하면서도 머물렀고 선 자리에 따라 시선이 바뀐다고, 머무르는 이유를 자꾸만 찾았다. 합리화. 나 같은 위선자는 이 짓에 능하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을 속였다. 나는 속았다.
알면서 속는 기저에 무엇이 있을까. 성취에 대한 공포, 지난 시절에 대한 미련. 입 밖에 내는 순간 자신을 무너뜨릴 포자가 시간을 타고 마음속에 퍼졌다.
그 결과,
지금:P
2.
뉴스와 일상이 밀접하게 닿아있다 보니 생활 대부분이 이쪽에 함몰된 경향이 있다. 농담을 하거나 드립을 쳐도 시사와 연관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쪽 일이고, 습관적으로 뉴스를 읽는다. 직접적인 인과는 아니겠지만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내가 없다.
뉴스를 보거나 몇몇 커뮤니티에서 뉴스에 보도된 내용으로 썰을 푸는 걸 보지 않으면 사실 인터넷을 할 일이 별로 없다. 글 쓸 때 글감 모은다거나 자료 찾아보는 일은 때때로 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폰이나 컴퓨터 사용 빈도가 상당히 떨어져야 마땅한데 하루 종일 이 둘을 붙잡고 산다.
언제부터였나 모르겠다. 가끔 내가 왜 이 내용을 알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만 두고 보더라도 부산 엽기살인/강신명 개입설/정준영 귀국-사과문/모 지역 불륜 썰/지역별 화재/장자연 사건/송 회장 자살 건/호날두 헤트트릭/나경원 발언 건/MB 보석 후 재판/항공기 추락 등 현안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뉴스 없이 잘 살았'는데 어쩐지 요즘 나는 세상일에 '투머치'하다. 습관이 돼 버린 걸까.
3.
얼마 전 전자책 단말기를 사서 e북으로 책을 읽는 중이다. 최근엔 전자도서관에서 '경제적인 선택'과 관련된 책을 빌렸다. 평소엔 접하지 않던 분야지만 전자책 특성상 부담 없이 빌리고 반납할 수 있어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에 '기회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앞선 글에서도 몇 번 밝혔듯 친구의 고액 연봉자 대열 합류가 발단이 됐다. 단편적으로 내가 수습 생활하면서 하루 14~22시간, 주 6일 일하고 거머쥔 급여는 200만 원 남짓. 친구가 이직 후 신입 교육을 받으며 받은 금액이 대략 200여만 원. 이때 친구는 하루 4시간씩, 주 5일 교육'만' 받았다. 덧) 확인 결과 신입교육 당시 받은 200여만 원은 '출장비' 명목이고, 급여는 따로 받았다고 한다. 즉 내 노동시간의 1/3~1/5시간 일하고 급여는 약 3배를 받은 셈이 된다. 이공계의 임금이란 유니콘 같은 것이구나:0
소득격차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향후 미칠 영향에 대해 전보다 진지하게 임하게 됐다는 말이다. 우리 둘의 시발점은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일부에 불과했고, 지금은 적게는 2.5배에서 많게는 3배 넘게 소득 차이가 난다.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보통 이런 경우 수입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게 되는데, 단순히 셈해도 내가 앞으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향후 20년간(=은퇴 전까지) 벌어들일 수입을 친구는 6~10년 안에 거둬들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비슷한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고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배금주의를 찬양하는 건 아니다. 다만 30대에서도 중반에 접어들며 주변에 육아를 시작한 지인들이 부쩍 늘어났고, 가족을 이루며 아이를 기르는데 소모되는 비용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개인에게 만 원과 '아빠'에게 만 원은 같은 돈이지만 쓰임에 따른 가치는 상당히 달라진달까.
그렇게 볼 때 친구(=고소득자)는 중위소득 계층(=아마, 나)이 평생 동안 벌 수입을 일정 기간에 벌어두고 나머지 시간에 추가 수익을 내거나 또 다른 삶의 형태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또는 보다 풍족한, 조금은 다른 일상 형태를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게 부럽다기보다 '어째서?'라는 생각이 지금은 지배적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서로가 공부한 분야가 달랐고, 보다 고부가 가치를 지닌 분야에 종사하는 이가 동일 노동시간에 고소득을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기자를 꿈꿀 때 앤더슨 쿠퍼(CNN)의 책을 읽고 느꼈던 그 의문이 떨쳐지지 않는다. 쿠퍼는 자신의 책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에서 이렇게 밝힌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형이 어느 날 죽음을 선택(자살)한 뒤 '사람은 왜 다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왜?'
4.
내게 '뉴스'를 빼면 무엇이 남지. 한동안 빠진 몸무게만큼 일과 연관된 부분을 내 속에서 덜어내고 보다 본연에 가까운 나를 찾아야겠다. 옛날엔 강아지가 헤벌쭉 웃는 것만 보고도 자지러지게 따라 웃었는데. 비울 때 생기는 여유로 자신을 좀 채우자. 그게 무엇이든 직업이 사람을 규정하지 않도록. 내 동심 어디 갔나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