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은 없다
포지션을 확실히 할 것. 그 대가로 회사를 나오고 다시 갈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아쉬운 점이야 없을 수 없지만 기준을 지켰다는 점에서 박수를 칩니다.
전날 그런 일이 있었죠. 퇴근 후 회식이라며 전화로 저를 불러 세운 일이요. 집에 거의 도착했다고 하자 멀지 않다며 돌아오라고 했던 대표와 이를 거절했던 저. 일련의 사건들은 그렇게 일단락됐어요.
그런데 웃긴 일이죠. 다음날 아침이 되고, 대표는 조금 늦게 출근을 했어요. 대표실로 가는 동선에 제 책상이 있어서 뭐라도 한 마디 하려나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지나쳤어요. 갸우뚱했죠.
그래.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리분별을 하고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제 일이야말로 무리수란 걸 알 텐데. 이렇게까지 생각은 연장선을 탔어요.
허나 그럼에도 피고용인에게 불리한 점은요. 이 회사의 승진이나 임금 상승이 전적으로 대표에게 달려있다는 점이죠. 시스템이 없는 곳은 개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커요. 이럴 때 불합리는 수면으로 드러나거든요.
이 곳에서 드물게 칼퇴를 고집한다는 한 직원이 그랬어요. "그래서 그런가 월급이 안 오르네요" 농담처럼 흘려듣다가 회식사건을 겪고선 인과가 사실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한 분야의 불합리는 전염병처럼 퍼져요. 상명하복에서 오는 비인간성 등은 확장성이 좋단 말이죠. 대화의 베이스가 되는 부분이 이처럼 경직돼 있다면 어떤 이야기든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일까요. 대표실을 찾아간 저를 대표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눈치였어요. 정리해서 '이런 이유로 회사를 다닐 수 없다'라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짧은 해명과 '알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아마 이 회사를 차린 이래 드문 케이스였겠죠. "대표님이 오라고 하시는데..." "못 간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거절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을까요.
다음은 제가 대표실을 찾아가 대표에게 말한 내용인데요.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기자를 그만두고 언론계를 떠난 이유도 개인 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이유가 컸던 만큼 지난주나 어제처럼 갑자기 회식이 잡히는 일이 앞으로도 벌어진다면 저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용인하는 분위기나 사풍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려고 합니다"
나름 정리해서 갔죠. 그리고 말했는데 마지막에 조금 어이없게도 "일이 재미없었냐?"라고 묻더라고요. 재미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질문의 속내가 보였어요. "다음에 간 곳은 오래 있으라"네요. 대표가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드러난 셈이죠.
오랜 시간 같은 방식을 고수해온 사람이나 젊은 시절 자신이 겪은 문화를 그대로 자신의 팀(회사)에 적용시키는 사람 특유의 곤조. 씁쓸했지만 내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짧은 시간 또 하나의 문화를 경험하고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업계 특성이라는 걸 무시할 수만은 없나 싶기도 하네요. 좀 더 회사 특성이 DB화 돼 구직자들이 헛발질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런 경험이었고요.
지금은 백수네요.
입동이 다가왔는데 말이죠.
다시 잡을 잡아 찾아뵙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