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브레이커

인간이란

by OIM

집에 손을 벌렸다. 고민하다가 문자 했다. 오래전 기자 할 거라고 올라와서 빌빌 대다가 문자 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생각났다. 그땐 일해주고 받아야 할 고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서 생활비에 차질이 생겼다.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시간도 많이 흘렀다. 당시 문자를 보내고 책상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언론사라든가 대기업이라든가 고시라든가 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가 그 나이 대 해내야 할 것들을 못 해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 그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그때 터져 나왔다. 단순히 사건으로 벌어진 일은 아닐 게다. 쌓여오던 것들이 일순 감정적 작용을 일으켰을 터다. 햇살을 커튼으로 막아두고 방안에 한참을 앉았다. 해가 저물고도 눈만 껌뻑대다가 그제야 몸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 기분이 재발했다.


엄마가 속상해하셨다. 많이 속상하신 것 같았다. 그럴 거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음이 아린다. 아빠에게 알리면 속상해하실까 봐 엄마가 중간에서 속앓이를 하신다. 다 큰 아들이 밥벌이도 못한 채 고집만 부리고 있으니 등골 브레이커란 게 따로 없다. 어쩌면 나는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지 못한 채 혼자 고고한 놀이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서글픈 말속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수많은 요인이 엉기설기 얽혀있었는데 나만이 그것을 부정했나 보다. 누군들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싶지 않을까. 버틴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데 어째서 내게 그렇게 낯선 일이 됐을까. 참는다는 건 어째서 내게 비굴한 일이 돼버린 걸까. 기껏해야 부모 품 안에서나 웃을 수 있던 철부지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상처를 부모에게 안겼겠지만 근래의 일은 기억에 남는다.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무겁게 가라앉는다. 언제고 그들을 생각할 때 부유물처럼 떠올라 감정을 자극할 게다. 미안함이, 죄송함이, 모든 감정이 그들에게서 비롯될 수 있음을 부정한 채 살아오던 자신이 오늘따라 작다. 한참을 나무라던 엄마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잇는다. 그마저 어릴 때처럼 온 감정을 다해 무섭게 꾸짖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걱정 섞인 나무람 속에서 나를 읽는다. 자식으로서 내가 거기 있다. 모자간 대화 속에, 오고 가는 말들 속에 감정을 숨기고 초라함을 감춘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미처 못 한다. 품고 있는 마음을 드러내 보일 때 버티던 감정 둑이 무너져 내릴까 봐 속으로 삼킨다. 글로 밥벌이를 했지만 어떤 말이 적합한지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다.


힘들다. 기자 한다고 보냈던 세월이나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도전들 앞에서 얼마나 나태한 삶을 살았던가. 지난 시간이 업보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안이한 생각으로 생활을 좀먹고 투정 같은 말들로 주변을 감쌌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이 궁색하다. 보이지도 않는 꿈에 내 뒤를 받치던 부모를 등한 시 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경주마 같다. 눈 앞의 꿈을 좇아 그것만에 가치를 부여한 채 혼자 똑똑한 척 달려왔다.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큐가 높다거나 공채를 뚫었다는 철 지난 유물만 부여안은 채 그렇게 살아왔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를 향한 살(煞)이 될 줄 미처 몰랐다. 어디서 매질을 시작해야 할까. 반성이란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