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예고하며

또한 당당하길

by OIM

오늘은 가볍게(?) 돈 얘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유튜브로 분당 직장인의 일급을 버는 아이도 있고요. 건물을 사서 억대 임대료를 받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런 돈벌이의 이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거 보면 돈이 좋긴 좋은가 봐요. 다른 말로 욕망 뭐 그런 거겠죠.


저처럼 언론계에 있다 보면 박봉에 조금 무뎌질 수밖에 없어요. 욕망에 무뎌지는 건 아니고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욕망을 꿈꾸는 법이 무뎌지죠. 곧잘 수긍하게 된달까요. 몇몇 회사에 들어가면 나름 고액 연봉을 보장받기도 하지만 이 바닥 1년 TO가 만만찮은 수준이라서요. 실제로 "조선일보 들어가면 되지!"라거나 "MBC는 돈 많이 주잖아!" 같은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단 말이죠. 제가 몸 담았던 직군만 하더라도 말이죠. 몸 담았던 회사 한정, 신입 공채로 4년간 3명밖에 안 뽑았단 말이죠. 유별나게 TO가 적은 직군이긴 하지만 언론계 자체가 그래요. 기자들 많다 많다 하지만 시험 보고, 실기 보고, 면접 보고 해서 어렵게 들어가는 또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들은 티오가 그렇단 말이죠. 이런 회사들조차도 급여 스펙트럼이 넓어서 박봉에 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쩌다 보니 그냥저냥 먹고살게 됐단 말이죠. 박봉이라고 하기 애매하고 그렇다고 많이 받는 것도 아닌 급여로 생활을 이어가는데요. 물론 언론계 생활과 비교하면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긴 합니다만 다른 직군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얘기로 치부될 만큼의 급여를 받고 있단 거죠. 제가 선 자리에선 적당한 급여라는 생각도 왕왕 들고요. 그런데 어쩌나요. 제주행이 슬그머니 머리를 드는 걸요. 제주에서 글 쓰며 사는 삶이라니, 기대처럼 낭만은 없어도 이 팍팍한 삶의 개구멍이 돼 줄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낙관이 있단 말이죠. 그렇다고 제주생활에 환상이 있는 건 아니고요. 한때 제주에서 살면 어떨까 싶어 곳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곳도 그냥 도시더라고요. 선 곳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라잖아요. 외부에서 보는 제주와 제주인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제주로 가면요. 아마 죽을 때까지 나를 떠나지 않을, 대부분의 사람을 떠나지 않을 급여 문제가 다시 불거져요. 박봉 오브 박봉이죠. 급여 수준이 거의 8년 전으로 돌아가는 셈이고요. 현재와 비교하면 고정지출을 제하고도 서울에서 받는 급여가 더 많은 수준입니다. 연고 없는 이가 서울살이 하면서 고정지출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죠? 그런데도 그 금액만큼 서울에서 더 받는단 얘기죠. '돈돈' 거리기 싫지만 이건 꽤나 전장 최전선의 총알 같은 문제라 확인을 안 할 수 없어요. 연봉 낙폭으로 치면 천만 원대 앞자리가 바뀌는 셈이고요. 실제 낙차는 천만 원보다 큽니다. 허허. 그럼에도 제주에 가야 하냐고요? 저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시로 던지고요. 어젯밤에도 던지다 잠들었습니다. 고민이 깊은 게지요. 오늘 아침 장대비를 뚫고 출근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품었더랬죠.


근데 말이죠. 사건이 또 터졌어요. 아니 동기가 생겼단 말이 적확합니다. 지난번에 제가 그런 적이 있거든요. 스스로 이해가 안 가는 글? 기사? 따위를 제 바이라인 달아가며 썼단 말이죠. 당연히 밥벌이의 일환이죠. 그런 글을 자발적으로 쓰진 않으니까요. 근데 거기 제 이름이 달리면 조금 문제의 결이 달라져요. 결도 다르고 격도 다르고요. 아니 뭐랄까, 이게 다른 분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가령 이런 거죠.


웹디를 전공한 사람에게 제품 디자인을 시킵니다. 당연히 '???' 의문이 들겠죠. 그걸 '그림판'으로 시킵니다. 괴발개발이겠죠. 그래도 급여를 받는 입장이니 '뭐야 이거...' 하면서 열심히 만들어낼 겁니다. 그리곤 웹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제품 디자인이 발표됩니다. 그림판으로 그린 작품이요.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거예요. '이거 얘가 한 거다' '우리 웹디의 작품이다'라고.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도 몰라요. 혹은 상황이 안 좋았구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근데 이걸 행하는 사람 입장에선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데, 하다 못해 기준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데 타의에 의해 내 지식과 기술이 괴이한 결과물로 재탄생하는 데 대한 자괴감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지금 제가 그렇고요. 오늘도 그런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과물을 완성시켜야 하고요. 심지어 다음 주까지 '그런 결과물'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합니다. 글 쓰는 이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논지 삼아 근거도 없이 그럴싸해 보이게 말이에요. 고객의 니즈를 맞춘 글인데요. 글쓴이 이름에 제 이름이 들어간단 말이죠. "나는! 절대로! 이런 글을! 쓰지 않는데!!!!!!!"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월급만 안 받으면요. 네. 한 맺힌 월급쟁이 한풀이하는 소립니다. 당연히 오늘도 점심은 거를 생각이고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글 무엇? 같은 상념으로 점심시간을 기다립니다. 비가 억수 같이 내렸지만 오늘은 조금 걸어야겠어요.


근데 그거 아시나요.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제주도로 두 번 가고도 남겠어요. 박봉은 부업으로 이겨낼 거고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직업 외적으로 돈을 좀 벌어볼 거예요. 제주에서 누군가 저를 불러주기만 한다면요. 애증의 섬, 어휴.


그러니까 혹시라도 제가 여태껏 쌓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제주에 좌판을 깐다면요. "예~이! 제주 아일랜!" 같은 제목으로 갑자기 글이 올라온다면요. 많이들 도와주세요. 이런 일기장 글보다 훨씬 잘 읽히고 유용한 글과 사진을 만들어볼게요. 혹은 영상까지도요. 제주에 간다면 그땐, 저는 정말 가난해지는 겁니다.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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