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똥 싸고

피똥 싸고

by OIM

위험했다. 면담 신청할 뻔했다. 사직서 양식도 찾았다. 순간 눈꺼풀이 떨렸다. 기껏해야 "이야기 좀 하자"거나 사직서를 썼다 지웠다 했겠지만 이건 분명 위험했다. 휴가를 불과 이틀 남긴 시점이다. 감정 기복의 표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던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자라 직장에서 치를 떤다. 프로(직장인) 답지 못하게. 근데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사정은 이렇다. 얼마 전 말도 안 되는 글 하나를 썼다. 이를테면 궤변 같은 것 말이다.


미 중서부 지역에 초대형 허리케인이 발생해 전신주가 날아가고 도로가 뒤집혔다. 이로 인해 4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그러니 재난방재과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해 안전사고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뭐 이런 식.


'hi, chevrolet'


무언가를 시키더라도 말이 되는 걸 요구해야 될 것 아닌가. 이런 글을 쓰면서 두어 번 완곡하게 거절해봤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근거가 약하다거나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지만 먹힐 리 없었다. 혼자서 열내다 제풀에 지쳐 브런치에 푸념했다. 또 자조했다. 근데 그게 또 일어났다.


2 연타다. 때린 데 또 때린다. 맞은 곳 또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말이 안 되는 요구를 또 해댄다. 그것도 2개나.


기사를 쓰려면 시의성이 있거나 공론화할만한 가치가 필요하다. 이 가치를 입증(주장)하려면 근거가 필요한데, 이게 탄탄해야 글도 힘을 받는다. 애초에 납득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글쓰기를 요구받으며 근거까지 만들어내려면 '펜으로 똥 싼다'는 말을 실현하게 된다. 그것도 '피똥' 싼다. 피똥은 약이라도 있지, 이 짓은 자꾸만 생채기를 낸다. 마음에 상처가 난다.


급기야 이런 생각도 했다. '글을 업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더라면', '기자 시험에서 모두 떨어졌다면' 이렇게 불편한 애정은 없지 않았을까. '시키는 대로 글 쓰고 월급 200만 원, 개꿀!' 같은 사고가, 다른 노선을 걸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비록 '주장'으로 구성된 원고지 30장짜리 글을 기사화하라는 지시를 받아도 '땡큐 베리 감사'로 갈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옛날, 그러니까 몇 년 전 사회부 기자로 일할 때 모 기업 홍보팀장에게 그런 이야길 들었다. "공정한 기사 감사하다"고. 기업과 대리점주의 갈등을 보도한 기사였다. 시간에 쫓겨 기계적 중립을 지켰지만 직감적으로 '잘못 썼구나' 싶었다. 지금은 내 밥줄을 핑계 삼아 의도적으로 잘못된 글을 쓰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펜을 놀린다.


지인이 그랬다. "니가 거기서 어떤 글을 써봤자 네 글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크지 않다"고. 안다. 그것도 아는데 내가 괴롭다. 단지 그것을 기억하기위해 썼다.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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