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산다

'별일' 필요한 날이지만

by OIM

스타벅스 연희 DT점이다. 치즈 베이글과 라테를 주문했다. 늘 그렇듯 크림 없이. 크림을 먹으면 간식 느낌이 강하다. 오늘은 점심 대용이다. 하지만 늘 그냥 먹는 걸 좋아한다. 찍거나 발라먹는 번거로움이 없어서다. 그냥 먹어도 맛있다. 그 정도 이유. 라테는 오랜만에 두유로 했다. 소이에 그란데. 둘 모두 오랜만이다. 베이글은 이미 입 안에 들어가 절반이 사라졌지만 라테는 뚜껑도 열지 않았다. 서론만 쓰고 한 모금 해야겠다. 다시 베이글 한 입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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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면 하나 해 먹는데 이렇게 부산을 떤다. 흐르고 넘쳐서 쿡탑이 난장판. 맛은 있는 편.





1. 구직 중이다. 일하고 놀고 일하고 논 탓에 잔고가 위험하다. 여차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나 싶지만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원하는 대로 산다고 앞가림을 못 하는 건 어디 내놓기 힘든 유치함의 상징. 글이나 입으로 무슨 소리를 하든 이상주의자의 궤변으로 바꿔놓는다. 밥벌이를 못한다는 건 그런 의미. 고집을 부리느라 너무 오래 쉬었나 싶다. 발등의 불은 이런 의미겠지.





2. 한 외신 기자직 면접날이 잡혔다. 못 간다고 문자 했다. 인턴직이라 그렇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급 탓은 아니다. 직급에 따른 급여 탓이다. 인턴이라서 최저임금 수준을 상상했다. 거기서 한술 더 떠 3/4 정도를 준다. 실제 법정임금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계산하지 않았다. 다만 내 예상에 못 미치는 수준에다 내가 받아본 급여 중 가장 낮다. 물론 '인턴'이라고 하면 상쇄되는 부분도 있지만 7년 전 인턴 때도 이것보다 많이 받았다. 그런 이유로 고민하다가 경험을 쌓을 때는 아니라고 판단해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3. 지난주 초에 면접 본 곳은 떨어졌다. 면접을 본 뒤 떨어지는 경험은 사실 내게 많지 않다. 생소함을 애써 위로해봤다. 그럼에도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역시 합/불합 여부를 내가 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구직 활동이 그런 거 아니겠나 생각해도 기분 나쁜 사실은, 면접 당시 면접관이 했던 괜한 압박과 면접 후 요구했던 에디팅 + 번역 기사. 별 것 아니지만 품이 드는 일들이다. 언론사를 나온 이후 지원 과정에 품이 드는 일은 지원 자체를 피하고 있어 미리 알았으면 이력서도 넣지 않았을 텐데 순서가 바뀌어서 해버렸다. 괜한 수고를 해버린 듯.





4. 베이글을 먹고 나자 아이스 라테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갈증 난다.





5.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스타벅스 단체석에 어린이 학습지가 서너 자리 차지하고 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가방은 의자에 얹혀있다. 신종 알박기인가 싶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도서관 알박기로 늘 문제가 되다가 시험기간이 되면 일부 개선되곤 했는데 이제는 카페에서도 이런 광경을 본다. 자리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지만 책과 필통 등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사람은 30분째 나타나지 않아 조금 의아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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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코숏, 오른쪽이 치즈다. 실제로 좀 더 뚱뚱한 편.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부비부비 하던 녀석은 치즈.


6. 집으로 향하는 길에 종종 고양이를 본다. 며칠 전엔 치즈 뚱냥이와 처음 보는 코숏(?, 정확하지 않다)을 만났다. 지나가는 길에 눈이 마주쳐서 "뭐해?"라고 했더니 치즈가 따라왔다. 앉아서 부르면 다가온 애는 있어도 지나가는데 이렇게까지 졸졸 거린 녀석은 처음이다. 한 10미터 따라왔다. 할 수 없이 멈췄더니 다가와서 비빈다. 여지없이 8자로 부지런히 다리 사이를 오간다. 앉았더니 비비다가 쳐다보고 비비다가 쳐다본다. 전에 다른 녀석 귀엽다고 손 내밀었다가 물린 적이 있어 손은 내밀다 참았다. 손을 펴 먹을 거 없다고 알려줬다. 냄새를 잠시 맡는가 싶더니 옆에 앉아 그루밍을 한다. 이때 맞은편에서 소리가 들린다.


처음 보는 코숏이다. 마르지 않았다. 어째선지 치즈와 이 녀석 모두 적당히 살이 올랐다. 부은 건지도 모른다. 치즈가 오른쪽에 앉았다면 코숏은 왼쪽에서 치즈보다 1~2미터 떨어진 채 앉아서 가만히 쳐다본다. 가끔 냐옹 거린다. "너도 올래?" 하자 이 녀석 갑자기 "츠츠츠츠" 거린다. 고양이가 입으로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이라 또 물리나 싶었다. 친해지는 것을 관뒀지만 이 녀석도 떠나가지 않는다. 잠시 치즈와 코숏이 서로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둘은 싸우지도, 다가가지도 앉고 각자 내 좌우를 차지하고 앉았다. 무슨 사이길래.


아무것도 줄 게 없어 어쩌나 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츄르' 봉지를 발견했다. 이걸 줍자 치즈가 갑자기 바짝 붙었다. 코숏도 울어대기 시작했다. 새삼 이게 그 유명한 츄르인가 했다. 예상한 대로 끄트머리를 짜자 살짝 남은 게 나왔다. 순간 치즈가 안달이 나서 머리를 들이미는데 뱀인 줄 알았다. 다시 짜주려고 츄르 봉지를 누르는데 순간을 못 참고 봉지를 핥아대는 게 아닌가. 반대쪽에서 코숏은 봉지 만질 때마다 울어대는데 남은 양이 기껏해야 한두 번 핥을 정도. 코숏도 줄까 싶어 봉지를 돌리려고 하니 치즈가 자석처럼 봉지 앞에 따라붙었다. 결국 두 번 다 치즈가 핥아먹고 코숏은 맛도 못 봤다.


날도 추운데 얘네 이렇게 밖에 있어도 되나 걱정스럽지만 책임질 순 없어 데려오지도 못하고 참 그렇다. 만나서 놀 땐 좋은데 그 정도가 적정 애정인가 싶기도 하고.





7. 5번에 적었던 자리 주인이 나타났는데 네 명이 아니고 두 명이다. 중학생 정도고 둘이서 옆 자리에 책을 쌓아두고 네 자리를 쓴다. 그리고 한 명은 엎드려 잔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도 카페서 공부 많이 한다더니 그런 모습인가 보다. 우리 때도 야자를 정말 '자율'로 해줬으면 카페서 책 볼 수 있었을까. ......놀러나 더 갔겠지.





8. 서대문도서관에서 책을 주기적으로 빌린다. 갈 때마다 일곱 권씩 빌리는데 자주 가지 않는 탓에 한 번 갈 때 많이 빌리려는 욕심이 작용해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언덕길에 위치한 도서관은 구태여 찾지 않는다면 갈 일이 없는 연희동과 홍제동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한가득 들고 오는 책은 대출 기간이 다할 때마다 위기감을 안겨주는 요인이다. 하루만 연체해도 일주일은 책을 빌릴 수 없다. 갖다 주러 가서 빌려오는 패턴은 지속돼야 한다. 그런 위기감.


금주의 독서는 <숨결이 바람 될 때>,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휴먼 에이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나인>, <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베를리너> 총 일곱 권. 빌려온 책을 풍요롭게 읽는 일은 3주 간격으로 찾아오는 도전이다.






9. 영화 이야기. <겟 아웃>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해피 데스 데이>는 겟 아웃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하고 짜임새가 엉성한 반면 기대치는 높아서 실질적인 재미는 한참 떨어졌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뭔가 쿠키영상으로 쓸 법한 이야기를 영화 한 편으로 제작해놓은 느낌. 토르의 자전적 이야기 같으면서도 코믹한데 배합이 잘못돼 각 부분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마크 러팔로의 캐릭터가 토르를 삼킨 감이 있다. 톰 히들스턴은 웃기려고 나온 것 같기도.





10. 성심병원 일을 보자. 참 불행한 일 아닌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우후죽순 벌어지고 있는 단적 사례가 드러난 셈. 저항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언론계에서 겪은 대표적인 일은 그런 거다. *최저임금 아래로 급여를 맞춰주면서 언론의 기능을 강요하거나 기자의 자질을 강조한다. *보상 없는 초과근무를 아무렇지 않게 시키면서 노동문제에 목소리를 낸다. *선배 노릇은 안/못 하면서 후배의 포지션을 강요한다. *바이라인 훔쳐 달면서 '그게 무슨 문제?'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 밖에도 *돈 주는 사람이 최고라는 식의 사풍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모두에게 독이다. 적어도 사회적 불합리나 폭력 앞에서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야성 정도는 간직하고 싶다. 왜 그런 거 있잖나. 훗날 자식이 생겨 다섯 살이나 일곱 살짜리 아이와 요구르트를 빨며 이런 대화를 하는 거다.


"아빠 징계받았어."

"왜?"

"상사가 서류를 아빠한테 던져서 아빠가 욕했거든"

"다쳤어?"

"아니"

"그러면 조금 더 참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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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음료 하나만 먹어도 배불러하는 편이니 위가 작은 편인가 싶지만 먹기는 또 많이 먹는지라...


11. 종류에 무관하게 '그란데'는 양이 많구나.





12. 어쩌다 보니 포인트가 쌓여서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덤으로 최근 영화를 예매한 뒤 설문조사에 답한 적이 있는데 팝콘 쿠폰을 문자로 받았다. 문자란을 올려보니 이전에 받은 음료 쿠폰도 있었다. 이로써 혼자서 영화를 보며 팝콘과 음료를 먹을 수 있는 풀셋이 완성됐다. 의도치 않았지만 조건이 갖춰진 관계로 백수일 때 얼른 유흥을 즐기고 와야겠다. 요즘 볼만한 영화가 있든가.





13. 기자는 다시 하기 싫은데. 그런 생각으로 요즘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나는 원래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이라고 말한 지인이 생각난다. 내가 그렇다.





14. 스벅 단상 두 번째.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자기 옆자리에 앉았던 외국인 커플을 기어코 콘센트 석으로 보내버렸다. 둘 다 랩탑을 펴고 앉았는데 남자가 두리번거리자 할아버지가 콘센트 꽂는 제스처를 취하며 창가 좌석을 가리킨 것. 두어 차례 넘긴 것까지 봤는데 할아버지가 연신 쳐다보며 행동을 계속하자 둘은 나란히 자리를 옮겼다.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외국인 커플을 바라보고 있는데 못내 마음이 쓰이는 걸까.





15. 어떤 일을 하는데 앞서 약간의 힌트라도 있으면 결정을 내리기가 한결 수월할 텐데 그런 게 없다. 불확실성은 결단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고 망설임이 모여 후회가 된다. 그럼에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결정 이후에 오는 결과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있다. 애초에 두려움은 거대한 난제 앞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막막함 앞에 오는 불확실성 같은 거니까. 뭐 그렇다. 내게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가 다가온다. 이미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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