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 Villafranca montes de oca~Burgos
1. 헤드랜턴은 좀 비싼 걸 쓰는 게 좋겠다. 80루멘이라서 샀는데 근시 심한 사람처럼 간신히 보인다. 약이 다 됐을지도 모른다만 이 정도면 불편하다. 바로 앞이 아니면 거의 안 보이고. 밝기로 따지면 폰 후레시 기능이 훨씬 낫다.
2. 상당히 어두운 지역으로 접어들면 아예 안 보인다. 그러니까 아침 7시부터 8시쯤까진 거의 암흑인데, 숲 속으로 들어가면 바람소리도 무섭다. 오늘은 숲 속에 눈이 네 개 있어 뭔가 했더니 고양이가 두 마리.
3. 뭔가 근질거리는 것 같긴 한데 이게 배드버근지 뭔지 모르겠다. 딱히 상처도 없는 것 같다만 단지 기분이 별로다. 이를 테면 '배드버그' 아냐? 같은 의심이 확산된달까.
4. 이른 아침 장난으로 건내던 말들이 진짜가 됐다. 원래 목적지는 20km쯤 떨어진 어느 마을이었으나 그 이후 목적지를 갈까말까 하다가 가기로 했다.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이유다. 미국-한국 남자 둘이서 장난 하다가 걷기 시작하며 휴식시간 포함해 총 11시간 걸었다. 거리는 얼추 39km. 이때까지 여로 중 최장거리다. 오전 7시에 나서서 오후 6시에 도착. 중간에 비도 오고 해도 떴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바람은 또 어찌나 부는지. 어제 도네이션 적게 해서 그런가.
5. 아마 아침에 피로가 터질 듯하다. 이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0-35일 완주 코스를 20일 안에 끊게 된다. 하지만 쉽지 않겠지. 무엇보다 서두를 동기가 없고, 오버페이스에 몸이 견뎌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39km 걸었으니 41km 한 번 도전해볼까나.
6. 40km를 10시간 동안 걷는다는 건 초당 1m 이상씩 10시간동안 꾸준히 발을 놀린다는 의미다. 아스팔트, 자갈, 바위, 오르막, 내리막 등 별별 길을 다 걷는다. 혼자 걸으면 좀 더 빨리 걸을 수 있어 성공 가능성도 높은 법인데...
7. 이런 페이스라면 아마 내일 400km대로 접어든다. 남은 거리 말이다. 수일 내로 절반을 돌파하면 800km의 끝이 서서히 보일지도.
8. 작은 마을 식당(바)에 갔더니 덤터기를 씌웠다. 다른 마을 레스토랑 기준 기껏해야 4.5유로 정도 나올 음식을 6.8유로에 팔았다.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가격명세가 나오지도 않은 6.8유로짜리 종이 한 장을 준다. 말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진짜 이놈 자식들이...ㅂㄷㅂㄷ
9. 대도시에 왔더니 맥도날드가 있다. 걸으면서 김치찌개, 돼지김치찜, 냉면, 순두부찌개, 미역국, 떡볶이, 짬뽕 등을 얘기했는데 맥도날드 있는 게 어디냐. 심지어 숙소로 가는 길이라 좋다고 사먹곤 피곤해서 못 일어난. 가격은 한국이 조금 더 저렴한 편. 굳이 따지자면 여기 세트 가격은 한국 버거킹 세트 가격과 비슷.
10. 누가 판초우의 좋다 해서 산티아고 가져왔다가 오늘 처음 입었다. 누가 좋다고 했냐...라는 생각을 한 4번 한 듯. 앞도 잘 안 보이고 고정하면 젖는 부위 다 젖고, 바람 부니까 판초가 몸에 붙어 판초 아래로 물이 흐르는... 게다가 형광펜 색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불쌍한 필그림.
11. 비가 오는 바람에 모처럼 돈 내고 드라이머신을 썼는데 덜 말랐다. 대부분 옷이 그러하다. 할 수 없이 침대에 빨래줄을 설치해 옷을 몇 널었다. 흐린 날씨가 한동안 계속될 텐데 이걸 어쩐담.
오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