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Hontanas~Fromista
1. 7시 48분에 깼다. 말인즉 늦잠 잤다. 어젯밤 무섭다며 경계하다가 늦게 잔 결과다. 창을 닫았더니 날이 밝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인기척도 없어 그렇다. 보통 알베 퇴실 마감이 오전 8시니까 하마터면 망할 뻔 한 거. 하지만 이번 알베는 9시까지 퇴실에다 세면장 웨이팅도 없어 수월하게 출발.
1-1. 산티아고길 시작 당시 6시쯤 출발하던 것과 달리 아주 적응을 해버렸어야...
2. 걷다가 소도시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봤다. 그러니까 내가 어제 무리해서 조금 더 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 도시다. 마을을 빠져나가려는데 광고입간판이 보였고, 거기에 '비빔밥과 된장국'이라고 써있었다. 고추장, 소주, 라면도 판다고.
3. 방금 아침을 해결했는데 무작정 입간판 보고 해당 알베르게로 갔다. 밥. 2주간 밥 다운 밥을 못 먹었다. 진짜 밥 말이다. 게다가 된장국이라잖나. 라면도 있다. 안 갈 수 없는 환경.
4. 문 닫았다. 그러니까 아침에 순례자들 내보내고 청소하는 시간에 딱 간 거다. 다시 문 열려면 2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문 연다 해도 밥만 판매하는지 알 수 없다. 근데 밥(사진)을 보니까 못 가겠더라.
5. 20분간 문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밥을... 어제 조금만 더 올 걸, 부터 시작해서 왜 알베 이름에 한국적인 특징을 넣지 않았을까, 하루만 여기서 쉬었다 갈까 등 오만 생각 다 했다. 심지어 간판 안 봤으면 지나쳤다. 밥.
6. 밥 먹으려고 계획에 없던 하루를 쓸 것인가. 심지어 비싼 편이지만 그건 문제가 안되고. 겨우 6-8키로 걸어왔는데 이걸로 하루 종치나. 근데 진짜 쌀밥이고, 와 미치겠더라.
7. 일단 그냥 길 가기로 마음 먹고 떠났는데 반경 1km 안에서 한 2번 넘게 고민했다. 심지어 한 번은 가다가 돌 위에 앉아서 돌아갈까 생각했다. 조금 더 걸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지금 되돌아가면 얼추 문 여는 시간에 맞지 않을까 라고...
8. 오늘 걷는 데까지 걷고, 버스 타고 되돌아와 이곳에서 묵은 뒤 다시 버스 타고 가서 걸었던 지점 출발하면 문제 없을까도 떠올려봤다. 군필자들은 알 거다. 훈련소에서 못 먹다가 음료나 치킨, 과자 같은 사제 음식 맛을 접할 때 기분을.
9. '빠꾸'는 없다며 미련 남을까 무작정 걸었는데 그 덕에 35km 왔다. 이 추세면 예정보다 순례자의 길을 1주일 앞당겨 마칠지도. 이게 다 그놈의 밥 때문이라며...
10. 길에서 삥 뜯겼다. 순례자 스탬프 찍어준다더니 찍고 나자 "도네티브, 도네티브"란다. 아, 이놈들 보소 진짜.
11. 걷는 도중 크록스 한 짝을 떨궜다. 그 탓에 가방에 달아놨던 나머지 한 짝을 버렸다. 난 데 없이 슬리퍼 없고...
12. 마트에서 냉동 볶음밥을 샀는데 맛이 '없었다'. 맛 없는 게 아니고 맛이 없다. 배고파서 700g이나 샀는데 1/10 정돈 버렸다. 그 뒤 컵라면을 먹고 콜라를 마셨다. 걷는 중 먹으려고 산 초코바도 하나. 배는 엄청 부르나 만족스럽지 않은 맛. 과일 깎아먹던 외국애들이 내가 접시에 쌓아올린 볶음밥 더미 보고 구경을...
13. 벙커침대 1층에서 자는 아저씨가 코를 고니까 2층에선 공연 보는 것처럼 소리가 잘 들리는구나.
오늘의 사진)
- 고르는 게 힘들다. 사진 작업은 돌아가서 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