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무엇인가'

오늘의 산티아고, 16일째

by OIM

10.17 Fromista~Carrion de los condes

1. 긴 하루, 짧은 여정.

2.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부슬비다. 서서히 옷깃을 적시는 가는 비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스페인, 10월의 비는 늘 이런 식이다. 우비를 입으려다 말았다. 알베르게 앞에서 짐을 꾸리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온다. 비에 젖은 털이 차다. "미야옹~" 몇 차례 앞에서 운다. 벤치에 앉자 허벅지 위로 올라온다. 초면에 이래도 돼?

3. 우비 없이 걷다가 옷이 젖었다. 가랑비도 비다, 뭐 그런 거겠지. 길 한복판에 가방을 내리고 우비를 꺼냈다. 주섬주섬 펼치는데 바람이 분다. 차다. 비바람은 늘 달갑지 않다. 거대한 판초를 뒤집어썼는데 가방 뒤로 넘기지 못해 낑낑댔다. 한참, 체감상 한참 그러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순례자가 도와줬다. "그라시아스" 습관처럼 달고 사는 말. 살았다.

4. 진흙길이 찐득인다. 비바람에 모자 챙이 내려와 앞이 잘 안 보인다. 몸이 차다. 물 고인 바닥을 가까스로 피해간다. 비오는 날 걷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속으로 뇌까린다. 스틱을 쥔 손이 차갑게 식어가는 가운데 오늘 목적지를 어디로 할지 고민했다.

5. 대략 18km. 근래 걷던 거리의 절반. 피로와 빨래가 쌓였다. 오늘까지 무리하면 사달이 난다. 그런 이유로 단거리에 그쳤다. 사실 단거리는 아니지만 최근 경향을 보면 뭔가 덜 걸은 느낌이 드니까.

6. 숙소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씻고, 빨래했다. 바람과 해가 건조를 도왔다. 빨랫줄 지분을 가득 채운 내가 민망하지 않게, 그렇게 빨래는 말라갔다. 동네를 돌며 슬리퍼를 사고, 슈퍼마켓에서 점심저녁 거리도 봤다. 어제 크록스 잃어먹어서 예상에 없던 지출이. 분하다.

7. 크록스는 아닌데 크록st.가 단돈 9천 원. 8유로였는데 쿨거래 덕분인지 1유로 깎아줬다. 더 저렴이도 있었는데 사이즈가 없고. 한국에서 산 건 한 2만 원 넘게 준 거 같은데 괜히 사왔다 싶었다.

8. 여기 음식들이, 한국이랑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르다. 어제 산 볶음밥도 그렇고 피자, 이번엔 스파게티 소스가... 기대하던 맛에서 벗어나자 어쩔 줄 모르겠다. 오늘도 스파게티 잔뜩 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이게 좀, 연한데, 일단 또 맛이 없다. 어쩔.

8-1. 승리의 과일. 메론 또 샀는데 또 맛있다. 복숭아 당연히 맛있고 방울토마토도 꾸준히 맛있다. 스페인은 진짜 과일...

9. 불행인지 다행인지 숙소 선택에 실패가 없다. 이러다 크게 한 방 오는 거 아닌가.

10. 라리가 경기 보고 싶어서 최근 경기장소들을 검색했더니 그나마 가까운 곳도 꼬박 하루는 걸어야 되는 거리=100km 이상.

11. 수녀님들을 뵀는데 예상과 다르다. 좀 더 쾌활하고 동적인 느낌. 종교란 무엇인가.


오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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