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레온'

나의 산티아고, 19일째

by OIM

10.20 El burgo ranero~Leon

1. 3일 연짱 비는 너무하잖아...

2. 접어넣었던 우비 그대로 다시 꺼내 풀세팅. 형광색 우비로 여치향내 풍기며 오전 7시 30분쯤 출발. 가다가 비 맞는 것보다 아예 준비 다 해 나가는 게 그나마 낫다.

3. 해도 안 뜬 7시 반, 동네에 목줄 없는 핏불테리어가 돌아다니네? 같이 나섰던 분이 흠칫. 사실 나도 흠칫. 저 멀리 어둠 속에 움직이는 형체 보고 개 아닐까 했지만 핏불테리어류일 줄은 몰랐다. 생긴 것도 무서운데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개들 몸집이 좀 크다;

4. 어제처럼 신발 속(=양말까지) 젖는 게 싫어서 최대한 빨리 가야겠다며 앞만 보고 걸었다. 젖을 기미 보이면 그냥 그 마을에서 묵으려고 마음 먹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근데 바로 다음 마을이 13km 거리라 멀더라. 와, 앞만 보고 걷는 13km는 진짜 멀다. 안 나온다, 마을이.

5. 방수세팅(바람막이모자+우비모자+등산모자) 했더니 고개 돌리기도 힘들어서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어차피 우비 입곤 뭘 할 수도 없는지라.

6. 첫 번째 마을 도착해서 또르띠아랑 콘레체 한 잔 하는데 물가 무엇. 다른 마을 2배다. 또르띠아가 좀 두껍긴 했는데 그 탓인지 4.5유로 받더라. zubiri에선 같은 음식이 2.5인가 2.7유로였는데. 음식 자체가 비싼 것보다 동네마다 가격차가 넘나 앞뒤 없는 것.

7. 두 번째 마을 가서 더 갈까 말까 고민했다. 가다가 비 더 내릴까봐. 근데 비가 그치는 모양새. 조금만 더 가보자 하다가 대도시(Leon)까지 왔다. 또 37km 걸은 셈인데 어차피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한 거리라 잘한 듯.

8. 여기서 연박하냐 바로 가냐 이게 문제였는데 연박하려고 마음 먹었다. 내일은 사진 좀 찍자는, 오랜만에 기록하는 이의 자세로 도시를 둘러보기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가자는 쪽이었는데 여기 볼 게 좀 있단다. 가우디의 초기 건축물인 보티네스 저택과 스페인 고딕양식 건축물 중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레온 대성당. 이 두 가지만 해도 머물 이유는 충분하다. 날씨만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9. 레온에, 한국라면 파는 중국마트가 있단다. 찾았더니 숙소에서 2.8km 나온다. 도보 32분. 가방 없이 이 정도야, 하고 갔는데 멀다. 이렇게까지 멀리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멀다. 왕복 5.6km. 소규모 마을to마을 거리다. 가니까 중국인 주인이 이쪽이라고 웃으며 안내한다. 우리나라 라면의 수출용 제품이 8-10종류 정도 되는 듯. 신라면, 너구리, 안성탕면(2), 짜짜로니, 삼양라면 샀다. 6개. 처음 보는 제품이지만 통조림에 담긴 김치도 샀다. 고추장 손대려다가 참았다. 무겁다 저건. 봉지에 물건 담아 숙소로 복귀.

10.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나가는 사람들 볼 때마다 '비켜라, 내 손에 지금 라면 있다고!'라거나 '김치도 샀다고!'를 속으로 뇌까려줬다. 몇 년만에 봉지 흔들며 뛰어다닌 듯. 말 그대로 신났다.

11. 두 개 끓여먹었다. 라면 제일. 김치는... 음, 제조국 잘 보고 사야 할 듯. 덧붙여 라면냄새가 강하구나. 숙소에 라면내 진동...

12. 숙소 앞에 KFC 있지만 눈에도 안 들어온다. 라면 먹고 콜라 마신 뒤 마카다미아로 입가심. 누워서 일기 쓴다. 최고다.

13. 내일 간만에 취재 아닌 취재 하려니까 조금 설렘. 들떠서 잠 안 오나:)

오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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